최상의 수행법
  월인 스님이라는 분은 참선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하셨던 분입니다. 선종에서는 아주 유명했던 분이에요. 그런 분이 80살이 지나가지고 별안간에 참선을 집어던지고 염불로 돌아섰습니다.
  선종사찰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내가 평생 화두공부를 해봤고, 깨쳤다는 말도 들었는데 그거 다 소용없소. 나는 염불로 돌아섰소.’라는 인터뷰 내용이 실리기도 했어요. 그 사찰은 참선만이 최고의 수행법이라고 이야기하던 기관이었는데, 그런 곳에서 나오는 신문에서 참선은 필요 없고 염불이 제일이라고 하니까 불교계에서 야단이 났습니다.
  누구든지 가면 “다 소용 없소! 나무아미타불만 부르시오!” 하실 정도로 최상의 수행법은 염불이라고 선언을 하신 거죠.

  보통 희한한 일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나도 그 분을 찾아갔어요.
부안의 변산반도에 월명암이라는 암자가 있어요. 높은 산인데 그 산까지 올라가서 제가 물었습니다.
  “아니 스님은 평생 동안 화두선을 해오셨는데 어째서 염불로 바꾸셨습니까?”
  그랬더니 그 스님이 그럼 “내 자네한테 묻겠는데” 하면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선방은 예외 없이 1년에 2번 입방을 하는데, 한 번 들어가면 2천 명 정도 되지 않는가? 그러면 그 전의 숫자는 그만두고 불교정화-불교정화라고 함은 1954년 이후를 말합니다-이후에 들어간 사람만 하더라도 몇 만 명이 되는데, 그 중에 깨친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깨친 놈 있으면 데려와 봐. 반쪽이라도 좋으니 데려와 봐.”라고 하시는 겁니다. 한 사람이 안 되면 반 사람이라도 데려와 보라는 말이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없다는 말이죠.

  법문의 참뜻
  당신은 이제 80살이 지났으니까 졸업할 때가 다 됐거든요. 그런데 졸업논문 낼 것이 없다고 생각하신 겁니다. 그래서 수행을 염불로 바꾼 겁니다. 그분이 나무아미타불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처님 법을 가지고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토론하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절대로 토론이나 논쟁을 할 생각을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내가 남하고 법에 대해서 토론을 해서, 내가 이기면 상대방은 진단 말이에요. 그러면 상대방은 누구에요? 상대방도 부처님의 제자니까 부처님의 제자가 진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법문을 가지고 남하고 토론하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스스로의 법의 발전을 위해 이야기를 듣는 것이지, 참선하는 사람보고 참선하지 말고 염불해라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여러분들 마음속에 꼭 간직하세요.

  지금 이야기가 약간 다른 곳으로 흘렀지만,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법문을 정말 말할 수 없이 많이 주셨습니다.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많은 법문을 주셨지만 그 속에 흐르는 참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 저런 것은 다 되는 것이 아니야. 되는 것은 딱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네가 과거 모든 부처님들, 현재의 부처님들, 즉 모든 부처님들로부터 너는 부처님이라고 인정받고 있어’입니다. 이거밖에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말이 없어요.

  가장 큰 거짓말
  새삼스럽게 애를 써서 부처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낮잠만 자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럴수록 더 염불을 해야 합니다. 부처님이 나보고 부처님이라고 하신다고는 하지만 내가 스스로 생각해보니까 난 아직 부처가 안됐구나! 이걸 우리가 느껴요.

  어느 법회에 나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누구라고 이름을 밝히진 않겠지만 어떤 스님이 와서 이야기하기를, 자기가 어디 가서 오랫동안 밖에 안 나오고 공부를 했더니 견성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잘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은  “나는 견성했다, 나는 부처가 됐다.”는 말입니다. 그 말이 가장 큰 거짓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너는 부처님이다.”라는 말을 부처님께 듣고, ‘그래 난 부처다.’ 라고 한다면 그때 거짓말이 되는 겁니다.
  마음속에 나는 이미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서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는 사람답게 살면 되는 거지, ‘나는 부처다. 그리고 넌 중생이니까 나보다 못한 존재야!’ 이렇게 남을 얕잡아 보고, 남보다 잘났다는 생각을 하면 그 순간에 벌써 나는 무간지옥에 떨어져 있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그래서 우리가 보현행원품을 공부하는 겁니다.
  우리는 부처님으로부터 ‘부처가 새삼스럽게 될 것도 없이, 넌 본래부터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어’라는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 그대로 살면 되는 겁니다.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이 보현행원품이거든요.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어’라고 하니까 ‘난 부처구나’ 하면 거짓말이 되는 것이고,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부처로서 살아가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보현행원품대로 살면 진실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꾸 보현행원품을 읽으라고 권하는 겁니다.

  돌아오는 모든 복
  보현행원품에 보면 ‘이 보현행원품을 부지런히 읽는 사람은 부처가 된다.’고 하는 말이 있어요. 그러나 여기서 ‘보현행원품을 읽는다.’는 말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부산까지 가는 지도를 봅니다. 지도를 본다는 말은 부산 가는 길을 알아차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부산 가는 지도를 보면서, ‘부산은 이렇게 가는구나.’ 하고 지도만 10년 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절로 부산을 갑니까? 말이 안 되죠? 그런 일은 없습니다.

  보현행원품도 이것을 읽으면 부처가 된다는 말은, ‘읽으면서 그 가르침대로 세상을 살면’ 이라는 이야기죠.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부처님생명으로 사는 겁니다. 그리고 부처님생명으로 사는 열 가지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결론은, ‘그 마음, 우리가 수행해온 모든 것들을 다 회향을 해라.’입니다.
  회향이라는 말은 회전취향(回轉趣向)이라는 말이죠. 내가 좋은 일을 했으면 당연히 좋은 결과를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좋은 일을 한 것에 대한 과보가 돌아오겠지만 그것을 돌려서 전부 남에게 주는 것, 그것이 회향입니다.
  보현행원품의 열 가지 행원 중 맨 끝이 회향입니다. 세상을 보현행원하며 살면 얼마나 착한 일을 많이 했겠습니까? 그러면 그 결과가 많이 돌아오겠죠. 그런데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돌아오는 모든 복을 하나도 남김없이 남들에게 다 주겠다는 것이 회향입니다.

  이 ‘회향’이라는 말을 빼놓고는 불교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절에 있는 사람들은 기도를 3일 동안 하고 나면 3일기도 회향이라고 합니다. 기도를 하고, 관세음보살 많이 부르면 아주 복을 많이 지었겠죠. 그런데 그 복 지은 것을 내 것으로 다 차지하면 그건 거짓말이니까 전부 회향해라. 남들에게 주어라. 이것이 회향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항상 회향해야 합니다. 또 회향이란 말도 음미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우리에게 회향하라고 가르쳐 주신 부처님은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하고 계실까요? 당신도 회향하고 계시다는 거죠.
 미처 몰라서 그렇지, 우리들은 부처님의 한량없고 간절한 기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시집 장가 잘 갔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원을 세웠을 때, 그것만 성취해주시는 부처님이라면 그건 바보 멍청이 아닐까요? 그런 부처님은 없습니다.
  부처님은 우리들이 아무런 괴로움도 없고, 아무런 불행도 없고, 아무런 장애도 없고, 아무런 근심걱정도 없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도록 해주시는 큰 원력의 기도를 해주고 계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회향입니다.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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