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자비로운 원력의 소리

대중법문 조회 수 3174 추천 수 0 2017.03.04 08:50:36

참다운 이해
우리가 불교를 신앙하는 데 있어서 첫 번째로 믿어야 하는 것은 *인과응보(因果應報)입니다. 인과응보의 진리를 굳게 믿으면 ‘아! 나는 지옥밖에 갈 곳이 없구나!’ 라고 스스로 절망하게 됩니다. 이것을 한문으로 ‘*지옥필정(地獄必定)’이라고 하기도 하고 ‘지옥일정(地獄一定)’이라고도 합니다. 지옥이 한 가지 꼭 정해져 있다, 혹은 지옥은 반드시 내가 떨어지도록 결정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지옥은 염라대왕이 판결을 내리기 전에 이미 나에 의하여 판결이 납니다.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입니다만, 여러분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지옥은 여러분 자신이 앞으로 꼭 갈 수밖에 없는, 그렇게 결정된 내 미래의 인생입니다. 

‘나는 지옥밖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참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중생으로서의 나는 절망을 해버리는 겁니다. 우리는 몸뚱이를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으로 인생을 살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 말고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요. ‘내 힘으로는 난 지옥밖에 못 가는구나!’ 라고 절규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고, 죽을 때 갈 곳이 당연히 지옥밖에 없는 것을 확실히 알면, 거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부처님의 *자비원력이 우리에게 빛을 주십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있다! 내가 있는 한, 네가 내 품에 안기는 한, 어떤 일이 있어도 넌 지옥에 안 갈 뿐만 아니라 나와 똑같은 부처로 살도록 결정돼 있다!”

이런 감격스럽기 한량없는 소리가 우리의 귀에 들려옵니다. 이런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오기 위해서는, ‘나는 지옥밖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 먼저 결정이 나야 하는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나만큼 착한 사람도 없어. 나만큼 똑똑한 사람도 없고 나만큼 밝게 사는 사람도 없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한테는 부처님이 일부러 와서 건져줄 필요가 없겠지요. 부처님의 원력이 필요가 없는 거예요. 제힘으로 건져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당연한 거지요. 

내 힘으로 해서는 절대로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상대유한인 내가 절대무한의 세계에 가야겠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하는 주체가 상대유한이기에 그 결과는 상대유한밖에 될 수가 없는 겁니다. 
아무리 내가 노력을 많이 해도, 아무리 내가 바른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전부 상대유한의 범주 속의 일일 뿐입니다. 상대유한의 상태에서 나에게 펼쳐지는 것은 지옥 아귀 축생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서는 구원이 없어요. 

영원한 구원
불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구원은 ‘부처 되는 것’ 즉 *성불(成佛)하는 겁니다. ‘절대무한을 나 자신에게 실현하는 것’ 그것이 불교의 목적 아닙니까? 그 절대무한의 가치실현인 성불, 그것을 내가 하겠다고 덤비니까 그것이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자비로운 원력의 소리를 듣는 겁니다. 내가 하는 일은 전부가 다 중생으로서의 활동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중생인 까닭에 중생으로서의 활동 말고 다른 게 뭐가 있어요? 중생으로서의 활동의 근저에는 ‘나’가 있습니다. ‘나는’ 이란 것이 박혀 있어요. ‘나는, 나만 하니까, 나나 되니까’ 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나나 되니까 이렇게 하지, 난 똑똑해, 난 착한 사람이야. 난 좋은 일 많이 했어.’ 이런 마음이 떠나질 않아요. 그래서 백 년 만년을 앉아서 수행하더라도 결과는 지옥 아귀 축생밖에 남지 않는 겁니다. 
‘자력!’ 다시 말해서 ‘내 힘으로 성불한다.’는 말이 언뜻 듣기에는 굉장히 좋게 들립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내 힘으로 성불한다는 말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거예요. 우리가 어리석어서 그런 말에 속는 겁니다. 성불이란 말은 상대유한을 벗어나서 절대무한을 실현하는 것이기에, 절대무한을 실현한다는 것은 절대무한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겁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자꾸 잊어버려요. 

여러분! 불교를 믿는 목적이 여러분에게 확실히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그것은 영원한 구원인 ‘성불’하는 것 밖에 없어요. 부처되는 것. 절대무한을 실현하는 것. 그것밖에 없어요. 

고백
예를 들어, 부산을 간다고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뭐죠? 지금 있는 곳에서 발을 떼는 겁니다. 여기에서 발을 떼지 않고 부산 가는 방법은 있을 수가 없어요. 마찬가지로 ‘내가 부처가 된다. 부처가 되는 것 말고는 내 인생에 참다운 가치는 없다.’ 이렇게 결정한 사람의 관점에서 제일 먼저 할 일은 뭐에요? 
‘나는 중생이 아니다.’ 부터 나와야 해요. 

그런데 그건 불가능합니다. 전철을 타 봐도 쉽게 알 수 있어요. 전철을 탈 때 ‘나는 서서 가도 남은 앉아서 가야 한다.’ 이런 사람 아직 못 봤습니다. 어디 자리가 비어 있는지, 어떻게 자리를 찾아가서 앉을까 그것부터 생각해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인생 전체가 탐·진·치 삼독으로 꽉 차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무슨 부처가 돼요? 그건 불가능하죠. 

성불이란 말은 상대유한을 벗어나서 절대무한을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무한을 실현한다는 것은 절대무한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겁니다. 그렇기에 부처는 부처님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천만 다행스럽게도 아미타부처님이 계십니다. 아미타부처님은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 아닙니까? 무량수 무량광인 아미타부처님이 이미 부처가 되셨습니다. 아미타경에 보면 십 겁 전에 부처가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당신이 부처가 된 입장에서 보니 온 세계 모두가 어느 누구도 당신 밖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에 아미타부처님이 ‘나는 부처이고 내 밖에 중생이 있다’고 하면 그분은 상대세계에 계신 분입니까? 절대세계에 계신 분입니까? 상대세계에 있는 분이죠. 그러니까 그분이 참다운 의미의 부처가 되려면,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중생이 ‘남’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봐야 합니다. 그럴 때만 그분이 부처에요. 

그래서 그분은 생명을 바쳐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중생을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부처 되게 하겠다는 원력으로 사시는 겁니다. 그것 말고는 당신의 삶의 의미가 없는 겁니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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