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법문 날마다 부처님은 오신다

2017.04.22 16:15

[레벨:12]id: 문사수문사수 조회 수:1650

  오늘은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법우님들께서는 오늘 아침 뉴스에서
“…오늘 석가모니부처님의 탄생일을 맞아 전국에서 많은 불자들이 사찰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라는 아나운서의 멘트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면 당연히 듣게 되는 말이지만,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단지 석가모니라는 한 위대한 성인(聖人)이 탄생하신 날이기 때문에,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 우리가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만이라도 절에 가야지 남들에게 불자로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둘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는 단순히 역사적으로 이름을 떨쳤던 한 위대한 인물을 존경한다는 의미 이상은 되지 못합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석가모니부처님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진 분일까요?
우리는 매년 365일 중 하루를 ‘부처님오신날’로 정하여 여러 가지 봉축행사를 벌이며 이날을 기념합니다. 그러나 이날 하루를 기념하는 것으로만 그친다면, 이날을 제외한 나머지 364일은 부처님과 무관하다는 얘기가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또한 우리가 부처님을 맞이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를 점검하는 일은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은 우리에게 있어서 참으로 중차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은 분명히 부처님오신날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오신날의 진정한 의미를 살피기에 앞서서, 법우님들께 먼저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오늘이 부처님오신날이라는 증언은 누가 한 것입니까?
당연히 석가모니부처님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증언이 없었다면 오늘 부처님오신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삼천년 전에 인도의 조그만 나라 카필라의 왕자로 태어나 싯다르타라는 이름을 받고, 슛도다나왕의 아들로서, 야소다라공주의 남편으로서, 외아들 라훌라의 아버지로서 사시다가, 마침내 석가모니부처님으로 불리게 된 그분께서 증언하신 것입니다. 오늘이 부처님오신날이라고 말입니다.
이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당신이 태어나신 의미에 대하여 확고하게 대답해주고 계신 것이며, 우리에게는 인생살이에 있어서 실로 궁극적인 가치관은 무엇인가에 관한 해답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난 이후로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정을 꾸리기에 여념이 없고, 사업을 일구기에 눈코 뜰 새가 없으며, 지위를 높이는 데 힘을 쏟고, 나이 들어감에 따라 건강을 추구하다가는 결국 자신의 몸뚱이가 묻힐 명당자리 찾기에 이르기까지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묻는 것은 한가한 사람이나 하는 것인 양 끝없이 바쁘게 쫓기면서 말입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의 말씀은 실로 단호하십니다.

“부처님생명을 구현하려고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것을 끊임없이 증언하고 계신 분입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나는 왜 태어났는가?”
하는 물음을 참으로 자기화하고 있는지를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만이 태어남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또한 살아갈 가치가 있으므로, 이 몸뚱이를 받아서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왜 태어났는가?’ 하는 물음은 대단한 철학자나 도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나이나 입장을 불문하고, ‘나는 왜 태어났으며, 삶의 의미를 어떻게 구현해 갈 것인가?’ 하는 물음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걸고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변에는 대리체험(代理體驗)을 능사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소소한 일상들은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삶 그 자체에 대해서는 언제까지나 구경꾼에 머물려고 합니다. 이는 마치 백화점에서 아무리 오래 머물며 눈요기를 한다 해도, 막상 구매(購買)를 하지 않는다면 하찮은 물건 하나라도 가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은 언제나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방관자의 무책임한 구경거리가 아닐 뿐더러,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우리 또한 이 세상에 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부처님생명을 구현하려고 오셨다면, 우리도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이는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임을 알게 되면, 언제 어디서나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태어나시자마자 하신 말씀에 담긴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이 법문에는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을 음미해도 참으로 감사하고 기꺼운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단순히 삼천년 전에 인도의 룸비니 동산에서 한 아기의 육신이 탄생했다는 의미를 뛰어넘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부처님이라지만 어떻게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불식하고도 남을 생명의 신비를 머금고 있는 것입니다.
천상(天上)이란 관념의 최고 상태를 상징합니다. 또한 천하(天下)란 물질의 세계입니다. 이처럼 천상과 천하는 우리의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모든 것을 가리키는데, 부처님께서는 이 천상과 천하에 오로지 나 홀로 존귀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가치를 따져 보십시오. 어떤 생명이라 할지라도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보다 하위에 있는 생명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생명의 본래 자리를 빼놓고는 천상도 천하도 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천상에 머물던, 천하를 손에 쥐던, 그것은 결국 생사(生死)를 면치 못하는 상대적인 가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참된 생명가치는 어떤 상대적인 가치에도 비교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생명이 나의 본래 면목인데,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러나 싯다르타 또한 처음부터 자신의 탄생이 갖는 중대한 의미를 알아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방황의 늪에 빠지기도 하다가, 출가해서는 다양한 명상을 추구하기도 하고, 견디기 힘든 고행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깨치고 보니, 당신이 살아온 세월의 주인공은 중생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의 아들로 불리고, 한 여인의 남편으로 자리하던 몸뚱이도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 본래부터 절대적인 생명으로 태어났던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생명의 실상을 깨달으시고, 깨달으신 대로의 삶을 사신 분이기에 우리는 그 분을 일러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자신이 절대적인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여전히 못 미더워하고 있을지라도, 우리도 본래부터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태어났음을 알게 된 이상, 우리는 오늘 부처님께서 오셨다는 엄연한 진실에 마음의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이라는 말에 무척이나 당혹해 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아니, 부처님이 오늘 오셨단 말이야? 삼천년 전에 오셨던 것이 아니고?”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부처님께서 오셨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삼천년 전에 오신 분만이 부처님이시지, 어떻게 매년 같은 날마다 부처님이 오신단 말인가?”
하는 것은 순전히 그런 결론을 내리는 쪽의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오신 삼천년 전이 ‘오늘’이었다면, 삼천년 후인 오늘도 또한 ‘오늘’입니다. 때문에 부처님께서 오신다는 사실은 항상 진행되고 있는 영원한 진실이기에, 오늘도 부처님은 오시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내 앞에 전개된다고 해도 부처님생명으로서의 내가 선택한 세계의 현상이기 때문에 즐겁기 짝이 없습니다. 또한 바깥에 있는 어떤 힘에도 구속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바깥에 있는 어떠한 것에라도 더럽혀지지 않으므로 항상 맑습니다.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법우님께서 해야 할 일은 일 년 중 오늘 하루만이 아니라, 365일 모두를 부처님 오신 날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생명으로 탄생하신 법우님이기에 말입니다.


 2006년 부처님오신날 기념법회 법문 중에서~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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