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도 경력經歷을 앞세우려나

대중법문 조회 수 2178 추천 수 0 2018.06.16 16:02:13

생각해 봅시다.
화산(火山)이 터지면 시뻘건 용암(鎔巖)이 흐르는 광경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필름을 통한 목격이지만, 엄청난 자연에 대한 외경심(畏敬心)이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솟기 마련입니다. 그 단단한 바위가 녹으며 마치 커다란 강물처럼 굽이쳐 흐릅니다. 엄청난 열(熱)을 상상하기에 앞서, 주위의 어둠과 대비되는 찬란함에 도저히 눈길을 돌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화산이 터지기 직전까지, 그것은 천년세월 동안 제자리에서 꿈쩍도 않던 단단한 바위였습니다. 헌데 순식간에 물컹해지는가 싶더니 물처럼 흐르는 액체(液體)가 됩니다. 바위라는 고체(固體)가 열을 받아 녹으니, 액체가 된 것입니다. 액체 또한 가열(加熱)됨에 따라 기체(氣體)로 변합니다. 이렇게 고체도 실체가 아니듯, 액체도 실체가 아니며, 기체도 실체가 아닙니다. 물질화(物質化)된 어떤 것도 실체가 아니란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명의 가능성을 제한하려고 한다면, 스스로를 물질적인 실체로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름의 측정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한계를 넘어서려고 한다면, 순식간에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잊어버립니다.

자, 그럼 부처님 당시에 나름대로는 부처님을 모신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부처님을 잊고, 자신의 자존심이나 이익 또는 명예 등을 앞세울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봅시다. 

밧지 지방은 인도에서도 성격이 거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이름난 곳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佛法]을 만나, 구도자(求道者)들의 승가(僧伽)를 이루고 있던 어느 날입니다.
마침 석가모니부처님이 머물고 계실 때, 두 패로 갈려서 큰 싸움이 났습니다. 부처님이 계시는데 말입니다. (어허!)
이들이 싸우게 된 이유는 특별한 게 아닙니다. 승가에 들어온 공양물을 어떻게 배분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좋은 의미로 시작된 논의였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패가 갈리고, 서로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처님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해서 보다 못한 부처님이 다툼의 당사자들을 불러서 꾸지람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싸우느냐?”
제자들이 답합니다.
“예, 불교의 발전을 위해서입니다.”
다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불교의 발전이란, 대중이 생명의 조화(調和)를 이루는 화합(和合) 이외의 다른 게 아니다.”

이 정도로 말씀하시면, 알아듣고 싸움을 그쳐야 도리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무시라고 하기는 뭣하고, 부처님은 잠자코 앉아만 계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양쪽 모두가, 다 부처님을 위해서라는 식의 명분을 내세우는 것을 잊지 않으며….
그것은 각자의 처지를 강화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듯이 제멋대로였습니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이었습니다. 아무리 꾸짖어도 나 몰라라 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이제 구도자(求道者)인 자신의 본분을 잊었습니다. 이는 생명의 화합을 내용으로 하는, 승가의 일원이 되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생명이 조화로운 한가운데 자리하시는 분이 부처님 아닙니까? 그러니 부처님이 두말없이 다른 곳으로 홀연히 자리를 옮기신 것은 사필귀정이었습니다.


돌아봅시다.
그들이 처음 부처님을 뵈었을 때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며, 순간마다는 감사(感謝)로 가득하지 않았겠습니까? 당연히 귀의(歸依)하였겠지요. 귀의란, 나의 참생명인 부처님생명에 돌아가 의지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몇 년 세월 동안 부처님을 모시다보니 익숙함에 젖어서, 부처님을 제치고 자신들의 처지를 앞세우는 망동(妄動)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법우님은 혹시 젖은 풀에 불을 붙여본 적이 있습니까? 연기는 풀풀 나는데 당최 불이 붙질 않습니다. 바싹 마른 풀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그래야 빨리 그리고 잘 타는 법입니다.
‘나’라는 이름에 달라붙어 흠뻑 젖은 지식과 경험의 습(習)으로는 부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몸과 말과 생각마다 오직 자신이 옳다는 고집이 가득합니다. 그러니 ‘나’를 앞세우며 내뿜는 매캐한 독기(毒氣)로 말미암아, 주변의 누구 하나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합니다. 게다가 눈마저 뜨지 못할 지경이기에 온통 어둡습니다.
호흡을 할 때마다 항상 새로운 호흡이듯, 부처님을 만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처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동안 불교를 믿었고, 믿은 만큼 충실히 생활했다는 사실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제까지의 신앙 경력(經歷)이 오늘의 문제마저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을 살아가는 당사자에게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지금 삶의 중심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느냐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묻습니다.
지금 당신은 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처지를 앞세우고 있습니까?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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