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우에게 ‘열반(涅槃)’은 무엇입니까?

 

불교의 4대 명절로서 부처님오신날, 부처님출가일, 부처님성도일, 부처님열반일을 꼽는데, 이 가운데 부처님열반일(음력 2월 15일)이 올 3월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열반(涅槃)’의 의미에 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흔히 알다시피 열반일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돌아가신 날입니다. 또한 수행자가 돌아가셨을 때도 “열반하셨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열반’이라는 말이 그저 단순히 죽음을 일컫는 의미 정도로 쓰이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열반은 단순히 죽음을 대신하는 말이 아닙니다. 참생명을 성취하려는 수행자에게 있어서 열반을 증득한다는 것은 삶의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반드시 죽습니다. 불로장생의 영약(靈藥)을 먹는다고 해도 죽지 않을 요행수는 없으며, 좋거나 싫거나에 관계없이 죽음은 그냥 벌어질 따름입니다. 끝내는 죽고 만다는 사실,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그저 죽기 위해서 사는 삶일까요?

부처님가르침을 따르는 불자(佛子)라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망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는 것은 어디까지나 육신일 뿐, 우리의 참생명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사실, 육신은 원래부터 나의 소유가 아닙니다. 부모님과 세상이 공급해 준 양분을 먹고 자란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또한, 우리가 성장하는 동안 수많은 인연에 의해 받아왔던 격려와 배려, 많은 가르침 등은 우리의 생명 내용을 채워주었습니다.

따라서 자기를 육신에 한정시키면서 자기의 육신이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사는 것은 결코 생명의 법칙이 아닙니다. 산다는 것은 세상이 베푸는 무한한 공급에 반응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성취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무한한 공급에 따른 결과는 당연히 무한한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번뇌에서 해탈한 사람, 즉 열반한 사람입니다.

 

‘열반(涅槃)’은 산스크리트 ‘니르바나(nirvana)’의 음역으로서 단어의 본래 의미는 ‘훅 불어서 끄다’입니다. 번뇌를 타오르는 불꽃에 비유하여 번뇌의 불을 꺼서 번뇌가 소멸된 것을 뜻합니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음을 믿습니다. 이는 나의 참생명인 부처님생명이 열반에 들어 있는 것을 믿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의 참생명은 이미 열반을 성취했다는 것, 이는 완전한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넉넉하게 누리면 그만입니다.

 

열반이 내 생명의 진실임을 믿게 된 사람은 죽음을 바탕으로 한 온갖 근심을 다 놓아버립니다. 육신을 중심에 둔 중생의 생명관이 없어지고, 나의 참생명은 부처님생명이라는 절대적인 생명관을 확립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번뇌의 불길이 꺼져버린’ 열반을 증득하였으니, 더 이상 번뇌에 질질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단지 무한공급에 따른 무한성취를 누리며 살아갈 따름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삶의 이러한 진실은 삼천 년 전에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하셨을 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역연하게 우리 삶의 원리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물질인 싯달타의 육신은 돌아가셨지만, 부처님생명은 없어지고 말고 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자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이 베풀어주는 무한한 공급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은혜를 갚으며 살기에 바쁩니다. 따라서 무한한 성취는 무한히 주는 것으로 증명되기 마련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나에게 공급된 것은 다시 나로부터 세상으로 공급되어지는 것이 실로 생명의 법칙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을 일러 진정 잘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택한 살림살이는 열반을 참생명의 진실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세계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무한공급이 한시도 중단되지 않으며, 이런 사람이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택한 세계의 주인이 되어 살아갑니다. 따로 윤택한 살림을 바랄 필요가 없기에 말입니다.

 

 

정리 : 범정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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