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물의 ‘오늘도 출가하십니까?’를 통해 출가(出家)는 ‘나’를 규정하고 있는 관념과 습관의 울타리를 넘는 것이기에 수행자에게 있어서 출가는 진정한 삶을 향한 기본 조건이며, 삭발염의(削髮染衣)의 유무를 놓고서만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지면에서는 이러한 출가인(出家人)으로 살아가는 수행자들의 공동체인 ‘승가(僧伽)’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승가(僧伽)는 산스크리트 ‘상가(Sangha)’의 음역으로서 수행자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이 승가는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구성되는데, 비구(比丘;bhiksu)는 남자 승려이고, 비구니(比丘尼;bhiksuni)는 여자 승려이며, 우바새(優婆塞;upasaka)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처님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이고, 우바이(優婆夷;upasika)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처님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를 가리킵니다.


간혹 승가(僧伽)가 스님들을 가리키는 말인 줄 잘못 알고 있는 경우를 보는데, 승가(僧伽)는 어디까지나 스님과 재가자를 모두 망라한 수행자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특히 재가(在家)와 구별하는 의미로 스님들만을 지칭하기 위해 승가(僧家)라는 표현이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경전(經典)에서 수행자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승가(僧家)라는 단어가 쓰인 경우는 없습니다. 따라서 ‘승가(僧伽)’와 ‘승가(僧家)’를 혼동하는 일은 없어야 하며, 더욱이 승가(僧家)라는 단어를 쓰는 일조차 없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 불교계에 통용되고 있는 삼귀의(三歸依)를 보면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하는데, 사실 이것은 올바른 해석이라 할 수 없습니다. 불법승(佛法僧) 삼보에 귀의하는 삼귀의에 있어서 승(僧)에 귀의한다는 것은 승가(僧伽)라는 수행자 공동체(사부대중)에 귀의하는 것이지 스님들께 귀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승가(僧伽)를 스님들만을 지칭하는 승가(僧家)로 잘못 받아들이고 쓰여지게 된다면 승가(僧家)와 재가(在家)라는 이분법적(二分法的)인 구도를 낳게 되고, 이로 인하여 불교 자체에 대한 온갖 모순을 불러오게 됩니다.


가장 큰 모순은 부처님을 특별한 영역에 가두어 둔 채 재가자(在家者)는 부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그저 부처님을 바라보기만 하는 구경꾼의 입장에 머무르고, 스님에 대하여는 재가자보다 좀 더 부처님과 가까이에 있는 특수신분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낳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재가자로 하여금 자신의 입지가 불충분하다는 전제를 두게 하여 부처님께 다가가기 위해서는 중간에서 반드시 스님이 매개(媒介)되어야 한다는 착각을 일으키고, 이러한 착각은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의욕을 마비시켜 스스로의 구도심(求道心)을 억압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신행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疏外)시킨 채 가끔 절에 가서 개인과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정도로 만족하는 기복불교(祈福佛敎)에 머물고 맙니다.


이처럼 재가자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궁극적인 삶을 성취할 수 없다는 태도는 자기 삶의 주인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에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끝내 불교를 궁극적인 삶의 원리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신의 삶을 위한 불교이지 불교라는 진리에 따르는 삶이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외도(外道)에 떨어지는 것을 면치 못합니다. 외도(外道)는 단순히 불교 이외의 종교를 가리키는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나의 참생명이 본래부터 부처님생명이라는 생명의 진실을 돌아보지 않고 생명의 근원을 밖에서 따로 구하려 하는 것은 모두 외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승가(僧家)와 재가(在家)를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스님을 특수신분의 성직자와 같이 인식하는 것 또한 스님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제(司祭)와 같은 성직자는 유일신교(唯一神敎)에나 있는 신분입니다. 불교는 창조주와 같은 신을 인정하지 않기에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성직자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불교는 성직자가 없는 종교이며, 오직 구도자만 있는 종교입니다.


스님을 가리키는 ‘비구’라는 말에도 성직자라는 의미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비구는 산스크리트 ‘빅슈(bhiksu)’의 음역으로서 ‘음식을 빌어먹는 사람(거지)’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비구를 ‘걸사(乞士)’로 번역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비구니는 ‘걸사녀(乞士女)’로 번역되었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는 법(法)을 빌고, 신도들로부터는 음식과 옷을 빌어 수행하는 구도자가 비구이고 비구니입니다.


불교에는 결코 자기를 대신해서 빌어주거나 구원을 매개해주는 성직자가 없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삶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방관자에게 불교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삶의 문제에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과 그 믿음대로 실천하려는 당사자가 바로 불자인 것입니다.


따라서 승가(僧伽)를 승가(僧家)로 왜곡하고, 승가(僧家)와 재가(在家)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시도는 진작에 폐기되어야 합니다.

불교는 특별한 신분의 전유물도 아니고, 어떤 전문가만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온갖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해결을 향한 구도(求道)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 진정한 불자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불자의 구도행은 ‘나’라는 존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나’로서는 해결할 수 없음을 자각하고, ‘나’를 규정하고 있는 관념과 습관의 울타리를 넘어서 출가(出家)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렇게 출가해서 부처님의 회상(會上)에 모인 구도자들의 공동체가 바로 승가(僧伽)인 것입니다.


사부대중 모두는 승가(僧伽)라는 공동체에서 만나 서로에게 감응도교(感應道交)를 거듭하는 구도자들이며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부처님가르침을 실현해가는 도반입니다. 우리가 귀의하는 승가(僧伽)는 바로 이런 곳입니다. 항상 출가인으로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승가입니다.


정리 : 범정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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