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믿는 본질적 목적은 오직 성불(成佛)하기 위해서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성불을 해야 하는 것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본래 우리의 참생명이 부처생명인 까닭에 중생이라는 허구의 삶을 온전히 청산하고 본래 생명의 가치를 확립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비로소 절대 안심(安心)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자(佛子)는 자기 자신의 본래 생명의 가치를 온전히 실현시키기 위해서 구체적인 몸짓이 필요합니다. 그 구체적인 몸짓이 바로 수행(修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서 점점 ‘아!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구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첫째로 자력에 의해서 깨닫는 길이 있고, 둘째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불력(佛力)을 믿어 나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깨달아서 아는 것이나 믿어서 알게 되는 것은 결국은 같은 길인 것입니다.

물음에 대하여 시작하는 이야기가 방향이 빗나가고 길어진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법우님의 물음에 먼저 이렇게 본질적인 이야기로밖에 답변할 수 없는 심경을 이해하시고 잘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력(自力)의 수행법에 의지해서 대도(大道)를 성취하는 길은 험난하고 힘들며 그만큼 시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걸립니다. 더욱이 말법의 범부중생은 근기가 미약하여 자력의 수행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자력의 수행을 난행도(難行道)라고 일컫습니다. 따라서 말법의 시기에는 오직 불력에 의지하는 이행도(易行道)라야 안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음을 용수나 마명 등의 대승의 보살들은 간곡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원력을 믿고 염불하여 성불(成佛)한다.”
고 발원한 불자를 ‘염불행자(念佛行者)’라고 일컫습니다. 이행도의 길을 가는 염불행자에게 있어 중요한 수행지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신심(信心)이 깊고 굳건해야 합니다. 둘째, 발원(發願)과 발심(發心)이 확실해야 합니다. 셋째, 진실한 정진(精進)과 겸손한 회향(廻向)이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마음을 내기가 결코 쉽지 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염불행자는 그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할 중요한 방편(方便)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법문(法門) 듣는 정진입니다. 법문을 듣는 정진은 불자로써의 삶을 언제나 청정하게 하며, 바르게 하며, 진실하게 하며, 지혜롭게 하는 최선의 방편력이기에 불자는 언제나 법문 듣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무량수경』에
“온 세계 불길이 가득할지라도 뚫고 가서 법문을 들을 것이니”
라고 말씀 주심도 법문 듣는 삶이 얼마나 지중한 정진인가를 일깨워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법회(法會)는 이처럼 염불행자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발원한 법우들이 한곳에 모여서 진실한 보리심을 발하고 탁마(琢磨)하며 정진을 모시는 참생명의 공동체이며, 승가(僧伽)입니다. 이곳에서는 언제나 법사의 입을 빌려서 변함없이 부처님의 금구성언(金口聖言)을 듣게 됩니다.

“너희는 몰록 무명에 가려져 스스로 윤회하면서 짐짓 중생노릇을 하고 있느니라. 아무리 오랜 세월 진흙 속에 감춰진 금덩어리라도 결코 본성을 잃지 않고 있듯이, 너희들의 참생명 또한 아무리 오래된 어둠 속에 갇혀 있었더라도 부처생명을 잃은 바가 없느니라. 너희는 나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부처님생명이니라. 이 말이 진실이니 믿어라.”
라고 법문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법문을 듣고 그 어떤 분별이나 이유나 반항함 없이
“네, 부처님께서 지금 법문주신 말씀 그대로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임을 믿겠습니다.”라고 지체 없이 화답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생명의 진실에 대한 일깨움을 기쁜 마음으로 온 마음 다해서 화답하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
하고 염불을 모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문 즉시에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을 모시는 이유입니다.



온 우주는 본래 한생명으로 충만하여 있습니다.
이를 법신(法身)이라고도 합니다.
이 법신을 범부의 입장에서 다정다감하게 인격화하여 불러 모시는 이름을 ‘아미타불’이라고 합니다. 즉 ‘법신’이든 ‘아미타불’이든 같은 의미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아미타불이 상주하고 계시는 세계는 극락세계라고 하는데 이곳은 모든 근심고통과 괴로움은 하나도 없고 오직 지극한 즐거움만이 충만한 세계라고 합니다. 사바세계의 범부중생이 현실의 괴로움을 여의고 진정 안락을 원한다면 오직 극락세계에 태어나길 발원하고 염불을 진실하게 모시면 온전히 왕생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쉬워 보이는 극락왕생의 법문이 처음부터 아무에게나 들려오고 나아가 믿어 지니는 삶으로 향상 되지는 않습니다. 중생의 안목이 흐리고 근기가 미약하여 이 법문을 듣게 되면 비웃고 하찮게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은 이와 같은 어리석은 중생이라 할지라도 하나도 남김없이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세워서 방편력을 세우게 되는데, 그 방편력 가운데 하나가 관세음보살님의 무한한 자비의 능력과 구제력입니다. 『관음경』에
“만일 중생이 온갖 고뇌와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누구든지 나를 생각하고 내 이름을 부르면, 나는 어디에 있든지 그들은 고통에서 구할 것”
이라 하셨습니다. 어머니와도 같으신 관세음보살님은 중생의 근기나 형편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몸을 나투시고 설법하시기 때문에 누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평등하게 구제해 주는 분이십니다.



사바세계는 실로 수많은 장애와 고통이 중생들 삶 속에 현존하여 하루하루를 힘에 버거운 일상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럴 때 중생은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듣고 작금의 현실을 벗어나길 간절히 기원하며 관세음보살을 지성으로 염하며 찾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이 작용하여 능히 세간의 고뇌를 제거하여 진실한 삶으로 나아가게 이끌어주십니다.

진실한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함은 지금까지 현실의 이익이나 어려움은 허망한 것임을 일깨워주시고 또한 헛된 중생노릇에서 벗어나게 하여 본래의 참생명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관세음보살의 묘용이요 자비심입니다. 그래서 중생이 헛된 꿈에서 깨어나서 관세음보살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보니 관세음보살은 오간데 없고 지금 이 자리가 온통 진리광명이 충만한 본래 극락세계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도 당신과 같은 삶을 살아갈 것을 서원하게끔 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신앙의 궁극의 목적입니다.

어릴 적 엄마에 의지하여 아이가 성장을 합니다. 아이는 외로울 때나 슬플 때, 힘들고 어려울 때, 기쁘고 즐거울 때도 항상 엄마를 찾고 늘 함께 하며 성장합니다. 그러던 아이가 성장하여 엄마가 되어서 지금은 계시지 않는 어머니를 그리며 간절히 불러봅니다.


“아! 나의 어머니…”
이제 답은 법우님이 발견할 차례입니다. 어릴 적 부르던 엄마와 철이 들어서 부르는 어머니와 무엇이 다르며 무엇이 같습니까? 법우님의 염불신앙의 향상심을 찬탄드립니다.



<문사수법회 명성법사님>

댓글 '1'

뚜벅이

2010.02.27 14:33:42

좋은 법문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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