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계란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불과 몇 시간, 몇 분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던 껍데기를 깨고나와 병아리로서의 자기 생명을 드러냅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과연 지금 어떤 껍질을 깨고 태어나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혹시 단단한 껍질을 끝없이 나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깨기보다는 오히려 그 안에 안주하는 것을 능사로 해오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산다’라고 하지만, 그 밑변은 살려짐 속에서 사는 것임을 법문을 통해서 늘 공부합니다. 인생을 굳어져있는 어떤 껍질, 삶의 조건일 수도 있고, 지식이나 명예, 부(富) 등 이러한 것들이라고 규정하는 한 거기서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러한 상대적인 것이 우리들의 껍질입니다.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한 껍질밖에 없는 것, 이것이 중생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나를 둘러싼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염불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염불이란 뭘까?
염불은 한마디로 ‘나는 부처님의 몸’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근원적인 자각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육신이나 누군가의 자식, 부모 이런 상대적인 입장을 앞세우는 몸이 아니라, ‘나는 철저히 부처님의 몸으로 살고 나를 통해서 부처님생명임이 증명된다’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다시 얘기하면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임을 상대적인 세계를 통해서 드러내게 됩니다. 결국 상대적인 세계는 부처님생명이 자기 삶을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우리들은 염불할 때 나부터를 생각합니다. 불교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새벽예불을 하고 정진을 하고 무엇인가 열심히 한다하더라도, 그것이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에게로만 회향이 된다면 이건 문제가 있습니다. 혹여 지금 하고 있는 염불이 나 하나의 정신적인, 물질적인 만족만을 위해서 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방으로 피어날 수 있는 염불의 향기를 상대적인 만족의 껍질에 가두고 있는 건 아닌가? 한번 점검해 봐야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법회의 이름이기도 한 ‘문(聞)·사(思)·수(修)’에 대해서 점검해보기로 하겠습니다. 가끔씩 ‘문사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바로 문혜(聞慧), 사혜(思慧), 수혜(修慧)를 뜻합니다.
‘듣는 지혜’, ‘생각하는 지혜’, ‘수정하는 지혜’ 이 세 가지가 구족되지 않으면 그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그래서 염불하는 사람은 하다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지혜가 샘솟습니다. 그런데 없는 지혜가 나오는 것일까?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능력이 염불을 통해서 발현되는 것입니다. 능력을 갖고 있어도 그것을 발휘할 줄 모르고, 세상을 향해서 회향할 줄 모르면 그것은 내 인생이 아닙니다. 드러내야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지식이 아니라 지혜라고 부릅니다.

문혜(聞慧), 듣는 지혜
이 세 가지 중 제일 첫 번째는 문혜(聞慧), 즉 듣는 지혜입니다.
문혜가 드러나려면, ‘문훈습(聞薰習)’이 되어야 합니다. 훈습이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젖어드는 것을 말합니다. 경전에도 ‘향을 쌌던 종이에 향내 나고 생선 묶은 새끼줄에서는 비린내가 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어떤 향을 배어들게 하느냐도 중요합니다.
법회에서도 법문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모두 법문소리에 훈습됩니다. 경전을 같이 모시는 그 속에서도 모르는 사이에 젖어듭니다. 그 훈습력은 지금 당장에는 아무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진실의 씨가 됩니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진실의 씨가 되어서 평생 나를 자극합니다. 결국 우리는 무언(無言), 유언(有言)의 법문을 알게 모르게 듣고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법문을 듣는다는 것은 ‘젖어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문훈습이 단순히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먼저 자신을 ‘내 삶의 현장’에 던져야 합니다. 그럴 때 살려집니다. 또한 내가 듣는 것이 아니라 들려질 뿐입니다. 부처님생명으로서 나에게 염불이 들려지기 시작합니다.

사혜(思慧), 생각의 지혜
두 번째는 사혜(思慧), 즉 생각의 지혜입니다.
이 사혜라는 것은 단순히 생각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행동[身業]하고 말[口業]하는 업을 발동시키는 것을 일러 생각이라 합니다. 그래서 생각이 모자란 사람에게 고상한 행동과 좋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법문을 듣고 훈습되면 생각을 구성하게 되는데, 그 생각에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들은 것만큼 생각을 모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모으는 것으로 세 가지 단계를 이야기합니다.
1단계 심려사(審慮思 : 어떤 것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
생각하는 것을 가져다 판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건 옳은 생각인가, 그른 생각인가?’ ‘해야 할 것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사유(思惟)하는 것입니다. 우선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고 이후에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행동할 때에도 심려를 하게 됩니다.
2단계 결정사(決定思 : 일을 하려고 결정한 마음)
판단에 의해서 결정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내 인생을 사는데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라는 원칙을 양보하지 않을 거야”라고 결정하는 마음을 생각에 뿌리박습니다. 흔히 말하는 ‘작심의 단계’입니다.
3단계 승사(勝思 : 뛰어난 생각)
이렇게 심려사를 하고 결정사를 하고 나니 승사(勝思) 즉 뛰어난 생각이 나옵니다.
‘오늘부터 이제 49일 정진 들어가는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반드시 꼭 할거야!’ 라고 마음의 결단을 하게 됩니다. 이 뛰어난 결단[勝思]을 하게 되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은 당연해집니다. 이러한 심려사, 결정사, 승사에 의해서 생각의 지혜를 숙성시켜 나갑니다. 결국 사혜(思慧)라는 것은 과정상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염불을 하다보면 안에서 갈등이 일어납니다. ‘해서 뭐하나’라는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이는 사혜(思慧)단계에서 반드시 겪게 됩니다. 그래도 판단과 결정에 의해서 지속해나갑니다.
지금까지 문혜(聞慧)와 사혜(思慧)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다수는 퇴굴심(退屈心)이 일어나 이쯤에서 머뭅니다. ‘나만큼 정진한 사람 있을까’, ‘염불은 이만하면 됐지’라는 생각을 냅니다. 하지만, 이럴 때 수혜(修慧)가 따라가지 않으면 염불은 염불답지 못하게 됩니다.

수혜(修慧), 수정하는 지혜
수혜(修慧), 닦는다. 정확히 말하면 ‘닦여진다’인데, 문혜, 사혜에 의해서 닦여집니다. 이렇게 닦여지는데 있어서 진짜 양보할 수 없는 근원적인 것을 일러 ‘공경수(恭敬修)’라고 합니다.
무엇에 대한 공경일까? 어떤 자리, 어떤 상황에서도 ‘저는 아미타부처님과 제대성중(諸大聖衆)을 가장 우선 공경하겠습니다’라는 자세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은 무한생명 무한광명, 즉 나의 참생명입니다. 성중은 내 생명을 살려주시는 분들, 다시 말해 내 주위의 내가 만나는 모든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나의 참생명’을 공경하며 ‘나와 만나는 모든 분들이 부처님생명’임을 공경하는 것을 일러 공경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무여수(無餘修)’입니다. 바로 남김 없는 수행이란 말입니다. 이 말은 ‘오로지 나무아미타불만을 칭하고, 나무아미타불만을 염하는 것’을 뜻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무간수(無間修)'입니다. 시간적인 간격 없이 오로지 항상 이어져가는 염불을 말합니다. 나옹스님의 말씀처럼 ‘생각생각, 시시각각, 노는 입에 염불’해야 합니다. 셀 수 없이, 끝없이 우리는 나무아미타불 법문으로 모든 생명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세 가지를 모아서 ‘장시수(長詩修)’라고 합니다. 아미타부처님과 성중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가지고[恭敬修] 오로지 남김없이 염불하면서 그 인연으로 살 것이며[無餘修], 어떤 이름,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오로지 부처님생명으로 염불하는 것[無間修], 이 세 가지를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하겠다는 맹세를 일러 ‘장시수’라 합니다.
이 네 가지 사수(四修)가 다른 얘기 같은데 알고 보면 하나로 귀결됩니다. 바로 ‘내가 있으면 염불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염불은 되어지는 것이지, 결코 내가 하는 염불은 없습니다. 염불 못하는 나를 부처님께서 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아무리 하기 싫은 염불을 했어도 그것이 귀로 들려오고, 마침내 우리를 살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염불은 되어지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문혜, 사혜, 수혜는 문훈습(聞薰習)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먼저 자꾸 들어야 합니다. 평가하는 내가 있는 한 자꾸 훈습의 인연을 맺어주십시오. 그러다보면 그것이 사유작용을 하게 되어 결국 내가 닦여집니다. 나를 둘러싼 껍질이 사라집니다.
자꾸 염불하십시오. 예로부터 염불하는 분을 일러 ‘인간 세상의 연꽃’이라 했습니다. 염불해서 여러분이 연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염불하고 있을 때, 이미 염불로써 세상에 향기를 주고, 그 꽃의 아름다움을 가꿔나가게 됩니다. 한 줄기 향으로 피어나는 이 염불의 무량한 공덕으로 우리들의 참생명은 이미 발현되고 있습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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