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의 물에 담긴 은혜

대중법문 조회 수 30044 추천 수 0 2010.02.05 18: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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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기에,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있기에,
이 음식으로 몸 다스려,
만생령의 복밭 되겠나이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강원도의 한 지점을 지나가는데, 내린천(川)의 시원임을 알리는 푯말이 눈길을 끌더군요.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그곳의 위쪽으로부터 계속 물이 흘러오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의미의 시작 지점이 있는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대략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공감(共感)하는 사람들이 표지석(標識石)을 세웠을 뿐입니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요.
“시내를 이루다가 강이 되더니, 마침내 바다로 모여들었다. 그러다가 증발되어 구름으로 바뀌었다가 비나 눈으로 내리니, 그것이 흐르는 물의 시작”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도는 얘기나 다를 게 없습니다. 물은 지금 흐르고 있는 그 상태일 따름입니다.
따라서 참다운 의미의 시작은 언제나 진행형(進行形)입니다.
 이는 곧 지금 이 순간도 시작에는 멈춤이 없음을 뜻합니다. 이렇게 끊이지 않고 거침없는 힘을 위신력(威神力)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위신력은 작동하고 있으며, 그로부터 세상만사가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엄청난 위신력의 주인공이고자 한다면,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다음은 법장비구의 23번째 원(願)입니다.

  저의 참생명은 부처님생명이니, 제가 부처님생명으로 사는 나라의 보살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서, 모든 부처님께 한 끼의 공양을 올리는 사이에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나라에 두루 이르게 하겠습니다.

일식지간(一食之間)에 극락세계가 전개됩니다.
 밥 한 끼 먹는 그 순간이 극락이더라 이겁니다.
이 얘기는 언뜻 들으면 상당히 관념론적으로 들리실지 모르는데, 세상에 내가 산다라고 하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보는 분이면 다 이해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조금 부연해서 말하자면 “제가 부처님생명으로 사는 나라의 보살들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었다”고 했지, 자기의 힘으로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은 무한히 공급받기에, 그때마다 생명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이것은 나만의 힘이라고 얘기하질 않습니다. 실로 독자적(獨自的)인 힘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가정을 일궜고 내가 사회적 업적을 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라는 안테나를 통해서 세상의 힘이 나타났을 뿐이지 결코 그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린 내가 내 노력으로 산다는 생각을 꿈에도 안 접습니다. 양보를 안 하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허나 우리는 한시도 세상의 도움 없이는 살아온 적이 없습니다. 독자의 힘만으로 살아온 게 아니라, 끊이지 않는 엄청난 공급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그 공급을 뭐라 그러느냐?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서~”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즉 부처님의 위신력 덕분에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법장비구의 23번째 원(願)을 모셨듯이, “모든 부처님께 한 끼 공양을 올리는 사이에” 자기 인생의 실상을 보아야합니다.
 아침 밥상에서 자신은 어떤 마음으로 공양을 들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당시에 감사(感謝)함을 느꼈는지, 그리고 감사했다면 그 범위는 과연 어느 정도였는지 돌이켜봅시다. 쌀 한 톨에 담긴 온 우주적인 생명의 흐름까지 감지하였는지 가만히 살핍시다.
 뿐만 아닙니다. 한 끼의 식사라고 하지만, 만약에 한 끼의 식사를 안 먹었고 다음 번 식사도 하지 않아서 계속 식사를 끊는다면, 어떻게 되는 지를 상상하십시오.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결말은 간단합니다. 스스로 목숨 끊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죽음의 맨 마지막 현상은 굶어서 죽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현상적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는 바깥으로부터 음식이 들어온다는 전제로부터 가능합니다. 헌데 이런 단순하고도 당연한 사실을 너무들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더군요. “여러분, 밥 빨리 먹고 일처리를 합시다”하는 회사 간부가 어디 하나 둘입니까? 일 처리를 우선에 두면서 밥 먹는 것을 절차상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혹은 밥상을 받다가 말고 반찬투정을 하는 경우는 또 어떻고요? 부부싸움 하다가 밥상 엎어버리는 사람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럼 그 죄를 누가 받을까? 자기 자신이 받는 것은 물론,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가 받게 되라는 것은 불 본 듯이 환합니다.
 그야말로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따르는지 모르는 뒤집혀진 생각입니다. 식사 한 끼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평범한 진리에 눈감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유명한 음식점에 가서 먹어야지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닙니다. 간장 한 종지만 놓고 먹더라도, 쌀 한 톨이나 물 한 방울에 담긴 생명을 잊지 않는 것이 참다운 식사인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알고 보니 내 생명의 끈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아는 사람이, 어찌 감히 밥풀을 흘리고 물을 함부로 버리겠습니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밥 한 톨, 물 한 방울을 과연 감사하며 받아왔던가?를 돌이킵시다. 그리하여 밥 한 톨, 물 한 방울이 내입에 닿기까지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흘러오는지를 생각해봅시다. 마침내는 이것이 어디로 가는가?까지 따져볼 일입니다.
 이와 같습니다. 밥상을 받는 것은 그저 많은 일과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세상이 나한테 “이거 먹고 세상이 주는 생명에너지를 공급받아라!”하는 사명을 부여받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로부터 생기는 힘은 나의 힘이 아니라, 나로 드러나는 힘입니다. 그 힘을 가지고 세상을 위해서 살라는 사명이 담긴 힘입니다.

한 방울의 물에 천지(天地)의 은혜가 스며있다고 얘기하면, 과장이 심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 한 방울이나 쌀 한 톨도 나라는 존재가 혼자의 힘으로 생산한 게 없음을 안다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이 나에게 생산해서 공급해주었을 뿐입니다. 천지간에 가득 찬 기운이 그것에 다 담겨있습니다. 세상의 땀방울이 다 그것에 스며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돈으로만 환산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아니지요. 우리는 이러한 언제 어디서나 무한히 살려주시는 이 은혜에 자신을 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맡길 줄 아는 그때, 곧 한 끼 공양을 올리는 그 사이에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나라에 두루 이르게 한다고 법장비구는 발원 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그 감사를 내 몸과 생각 속에 담아두고 살아갈 때가 극락왕생(極樂往生)한 삶이라는 얘기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새삼스레 찾아갈 극락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그 세계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법우님들은 이제 아미타부처님께서 우리가 한 끼의 공양을 올리는 힘마저도 자신의 힘이 아니라는 역설(逆說)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올리는 공양이 어디 따로 있을 것이며, 내가 이뤄놓은 업적(業績)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모두 다 부처님 힘으로 내가 살려져왔고, 살려진 힘으로 세상을 향해서 다시 공급하며 나라는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참으로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영광된 생명인지 도저히 짐작도 못할 지경입니다. 살려짐으로 해서 살고 있는 나의 삶입니다. 어찌 미래를 걱정할 틈이 있겠으며, 어찌 과거를 후회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어떠한 경우에도 그런 상대적인 가치를 앞세울 이유가 없습니다. 무한히 공급받고 있기에, 무한히 공급할 따름인 생명의 주인공입니다.

법장비구의 원은 분명히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미타불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이렇게 아미타부처님이 약속(約束)하셨다는 것은, 나의 참생명이 그렇게 약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생명이 극락왕생하게 되어있다는 것이 약속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언제 실현되는가?
 밥 한술 뜰 때 약속 그대로 실현됩니다. 그렇지만 밥 한술 들고 물 한 방울 마실 때 이 약속을 하였건만, 자기 생명의 약속을 어긴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밥 한술 떠 넣고는 자기 배부르니, 남의 배고픔을 우습게 압니다. 목마름을 해소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물 한 방울 달라고 할 때, “당신은 복(福)이 없어서 그렇다”고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입니다.
 아니지요. 내 배가 부른 것은 그 기운을 가지고 세상 사람을 도우라고 기운입니다. 나의 갈증이 없어지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목마르지 않은 상황을 만들라는 사명의 시작인 것입니다.
공양 한 끼를 통해서 살려주시는 은혜에 값하는 삶에는 이러한 책임과 의무가 따르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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