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만 있는 인생

대중법문 조회 수 30276 추천 수 0 2009.09.18 00:00:00
문사수 *.7.235.147



강이나 호수를 건너가려고 할 때, 우선 선착장을 찾아서 떠나는 배가 있는지부터 알아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뛰어난 수영 실력을 갖고 있어서 자신의 힘만으로 건너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그 위를 지나는 다리가 놓여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기에, 승용차를 몰고 가려고 합니다.

 

이는 곧 어떤 삶의 경계(境界)든, 자신이 그어놓은 범주 안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호경기(好景氣)인지 불경기인지 하는 것이라든지, 가족 간에 화목하다거나 불화(不和)하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얼핏 그러한 조건(條件)이 먼저 있는 듯하지만, 자신이 받아들이고 있는 삶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때문에 남을 대함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안다고 하는 것은, 좋고 아름다운 점만 아는 걸 뜻하지 않습니다. 나쁘거나 추한 면까지를 모두 포함하여야 비로소 그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러한가? 그를 대하는 나와의 관계(關係)를 전제로 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한 아줌마의 지적에 동감의 미소를 짓게 되는가 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극과 희극 중 무엇으로 분류하죠? 답은 비극(悲劇)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항변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만약 그런 정도가 비극이라면, 그 작가는 인생을 덜 산 사람이다. 무슨 소리냐?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쯤에서 죽이지 말고 오히려 결혼(結婚)을 시켰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비극이 뭔지 맛보았을 것이다”

상당한 역설(逆說)입니다.

결혼을 안했기 때문에 아직은 비극이 아니라는 주장은, 결혼을 통해서 상대에 대한 환상(幻想)이 깨진다는 사실에 입각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또한 결혼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인 결론에 말미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삶 그 자체가 아닌, 삶에 대한 측정과 평가로서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와 어떤 대상을 동일시(同一視)하면서 살아가는 게 자신의 삶입니다. 여러분은 무엇과 동일시합니까? 돈 입니까? 지위(地位) 입니까? 나이 입니까? 아니면 키나 몸무게와 같은 신체적인 조건입니까?

어떤 동일시를 하고 있느냐가 바로 자신입니다.

한마디로 이르자면, 동일시하고 있는 대상과 따로 떨어진 자기는 없습니다.

해서 같은 커피라도 언제, 어디서 그리고 누구와 마시느냐에 따라서 맛이 다르다고 느낍니다. 분위기와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따라서 2인칭이나 3인칭이라고 하는 너 또는 그나 그녀는, 그것을 판단하고 있는 1인칭으로서의 나 없이는 결코 발생하지 않습니다. 너 때문에 또는 조상 때문에 또는 사회 때문에 라는 말을 하지만, 그것을 동일시하는 나라는 1인칭(人稱)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실로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2인칭이나 3인칭 때문에 얼마나 속상해 합니까? 내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어야 말이지, 자식이나 부모로부터 친척들에 이르기까지 당최 마음에 차질 않습니다. 직장 동료들은 속 썩이고, 정치판이나 경제계의 흐름들은 마냥 내 뜻을 거스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2인칭 3인칭을 하루 종일 나열하여도 끝날 줄 모르는데, 1인칭에 대한 점검은 좀체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2인칭이나 3인칭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다 캐면서, 막상 자신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어떤 2인칭이나 3인칭이든 1인칭에 매달린 상태입니다.

때문에 나로부터 즉 1인칭을 점검하지 않고는 2인칭이나 3인칭의 인생에 의해서 끝없이 쫒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맞불의 원리와 같습니다.

들판을 뒤덮으며 넘실대는 불길이 마을 덮칠 것 같으면, 마을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미리 불을 질러버립니다. 불이 닥치면, 그것을 물로 끄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을 지르다니!

그 맞불이라는 게 참 묘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불이 태울 재료가 없어집니다. 게다가 불은 불을 태우지 못합니다. 불이 불을 만나면 죽습니다. 왜 그러한가? 1인칭밖에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불은 태워야 될 너라는 2인칭이 따로 없기에 그냥 없어집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물론 태워야 될 너, 대립하고 있는 너로 인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갖기도 합니다. 그래서 싸우고 나면 오히려 속 시원하다는 경우까지 있더군요. 나라는 존재가 확연해질 수 있는 건 싸움 상대인 너라는 존재가 또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와 나라는 대립구도를 갖는 한,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영원한 투쟁(鬪爭), 이른바 “만인(萬人)의 만인을 향한 투쟁”을 되풀이하기에 그렇습니다. 불은 불을 못 태우는 원리를 상기합시다. 물도 다르지 않습니다. 목욕탕에 물이 쏟아질 때, 물에 젖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물은 물을 적시지 않습니다. 그냥 물이 됩니다. 너무 단순합니다. 대립될 물이 없기 때문에 적실 물도 없습니다. 그냥 물은 물이고, 불은 불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반드시 1인칭에 의해서 2인칭이나 3인칭이 인식되기에 가능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아니 세상 그 자체가 오직 나라는 1인칭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바꿔 말하자면 이 세상에는 악당(惡黨)도 성인도, 지옥도 천당(天堂)도 본래부터 있는 게 아닙니다. 1인칭인 나를 떠나지 않으므로, 다만 있다면 1인칭인 나만 있을 따름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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