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생명의 자리에 앉으라

대중법문 조회 수 10088 추천 수 0 2016.04.27 11:03:24
임종법문에 가면 당사자와 가족들께 꼭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돌아가실 때 꼭 법문을 해주십시오. 임종하는 순간이 중요하니까, 평상시에 쓰시던 염주를 손에 꼭 잡으시고, 염불이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라고 당부합니다.

흔히 생명활동이 멈췄을 때를 죽음이라고 하는데, 내 기준점에서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없고, 체온이 안 느껴지니까 그분을 돌아가셨다고 할지 모르지만, 생명활동이라는 근원자리에서 보면 나 자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나의 참생명은 부처님생명으로서 무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몸뚱이나 경력, 나이, 성별 등의 상대적인 조건을 앞세울 때 이를 죽음이라 얘기하는 겁니다.
누가 어느 학교를 나오고, 나이가 몇 살이며, 과거 경력이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다만,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은, '우리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우리의 생명은 무엇을 살아오고 있으며, 또 어떻게 흘러가는가?'하는 것입니다.

내가 염불하는 적은 없습니다.
법우님은 지금 무슨 법문을 듣고 계십니까?
무엇을 생명내용으로 삼느냐가 인생의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어떠한 생명내용을 접수하고 있으며,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들은 만큼, 동의한 것만큼 자기 생명내용을 갖고 가는 것이 인생이기에 법문이 중요한 겁니다.

앞에 언급하였듯이 돌아가신 분의 경우, 당신께서 염불을 하셨다고 하지만 염불을 들으면서 가신 겁니다. 내가 염불하는 적은 없습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나는 왜 태어났으며, 어디로 가며, 가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정신 차리는 일입니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일이죠. 듣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돌아봄과 동시에, 거침없이 걸어 나가는 게 삶이고, 바로 ‘문사수’죠.
듣고 비춰보는 그때마다 수정해가면서 진정 가야할 길을 가는 거죠. 이렇게 사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하지 않습니까? 매일을 사는 이 순간에도 ‘찰라생 찰라멸(刹那生 刹那滅)’ 아닙니까?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게 나이며, 나는 그때마다 어떻게 자리매김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여러분이 매일 독송하시는 금강경에 간단명료한 법문이 있습니다.

“그때는 세존께서 공양하실 때라 큰 옷 입으시고, 발우 가지시어 사위성에 들어가시어 밥을 비시는데, 그 성중에서 차례로 비시옵고 본 곳으로 돌아오시어, 공양을 마치신 뒤 의발을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예로부터 금강경법문은 이 구절에서 모든 법문이 끝났다고 얘기합니다. 공양 하실 때라, 밥을 비시고 들어오셔서, 공양하시고 의발을 거두시고, 발을 씻으십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십니다. ‘나’라고 표현되는 모습이 이 안에 다 들어있어요. 그 외에 나머진 뭡니까? 희로애락이니 성공, 실패는 다 무상한 겁니다. 실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의미가 없기에 경전에서는 구구절절 설명을 안 합니다.
이미 다 갖춰진 것을, ‘나’라는 몸뚱이로 표현되는 것 속에 완전히 실현하고 사는 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이것을 흔히 구족됐다고 표현하죠. 이미 다 갖춰졌기에 구해야 될 게 아니라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다 공양 받으시고 나중에 자리에 앉으셨다.”
나는 이미 다 누리고 있는 자리에 섰습니다. 더 추구할 것도, 지나간 것에 대한 후회도, 불안도, 두려움도, 너와 나의 불화도 없는 거예요.
그냥 앉아계셨다! 어떤 것 때문에 앉은 것도 아니고, 누구를 위해서도, 다음을 위한 대비도 아니고, ‘그냥 앉았다’입니다. 앉아있을 때 앉아있는 것이 완전한 구족이라는 거죠. 나라는 사람이 내린 결론을 앞세워, 애써야 될 게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가만히 살거나, 적당히 살면 된다.’는 얘기로 오해하지 마세요. 나라는 자의 결론으로 애쓴다 해서 과연 내 생명 자체가 바뀌지는 않음을 얘기하는 겁니다.
실제 살아감에 있어서 금강경 말씀대로 자리를 펴고 앉을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 드뭅니다. 다 앉아있는 사람들인데 자기 자신이 우왕좌왕을 합니다. 쫓겨 다닌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인생은 매뉴얼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들이 해야 될 것은 금강경 첫 구절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그냥 자리에 앉았다.”입니다.
이 말씀은 ‘나’라는 생명을 있게 해 준 모든 것들에 대해서 나는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아름답다, 밉다, 라고 하는 상대적인 구별을 앞세우지 말고, 오직 ‘먼저 오체투지 하라’는 겁니다. 오직 “네!”하라는 겁니다. 거기에 ‘나를 앞세워 개입시키지 말라.’는 겁니다.
너는 못 살았기 때문에 혹은 똑똑하기 때문에, 못났기 때문이라고 하는 상대적인 것은 의미가 없다는 거죠.
실제가 그렇지 않습니까? ‘나’라고 하는 생명은 살려짐의 결과일 뿐, 나라고 하는 사람은 먼저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엄마젖을 먹고 자라고, 세상의 지식을 먹고 자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분들이 살려주시는 은혜의 주인공이 바로 나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라는 말을 하고 싶다면, 나는 오직 먼저 감사할 뿐입니다. 나를 말미암케 한 모든 원인은 내가 아니기에, 나 이외의 나와 인연되어 있는 모든 생명과 현상과 사물에 먼저 오체투지(五体投地)하라는 겁니다.

혹시 법우님은 60세가 되면 내 집은 어떻게 될 것이고, 우리 아이들은 어느 정도고, 70세면 내 건강상태는 어떨 테니 병원과 몇 미터 거리에서 살아야 될 것이고, 80세면 손주들은 어떻게 될 것이라는 매뉴얼을 갖고 계십니까?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오늘은 매뉴얼대로 만났습니까?
인생은 매뉴얼대로 되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단언컨대 앞으로도 매뉴얼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누구에게 악담하자는 게 아닙니다.
왜? 상대적인 그 무엇은 항상 변화해 가기 때문입니다.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평소 건강을 잘 챙기고 건강법에 대해 박식한 분이라 할지라도, 몸에 나타나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대비하든 말든 때가 되면 나타날 뿐입니다. 생명성장의 자리에서 보면 걱정할 게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상대적인 욕구나 상대적인 결과를 바쁘게 쫓을 게 아니라, 이 자리에 머물 줄 알아야 됩니다. 머물러서 앉아야 돼요. 진심으로 ‘나는 누구지?’ 물으며, 앉아서 자신에게 시간을 주어야 해요.
나라고 하는 자는 뭡니까? 나라고 하는 자는 있어본 적이 없어요. 세상과 무한히 관계 짓기 위해서 스스로 창조한 모습을 나라고 얘기할 뿐이에요.

여러분! 부모로서의 내가 있어 본 적이 있어요? 자식이 나오니까 부모가 된 것이지요. 회사를 나가니까 사장이요, 과장인 것이지 내가 있어본 적이 있습니까?
세상과 관계 짓기 위한 것을 '나'라고 부릅니다. 뒤집어 보면, ‘있어본 적이 없으니까 허무하냐?’ 이게 아니라 어떠한 있음도 가능한 것이 '나'입니다. 난 누구도 될 수 있고, 무엇도 할 수 있어요. 어떤 삶도 가능한 것이 '나'를 얘기하는 겁니다.

경전마다 장로(長老) 수보리, 장자(長者) 수달타가 계속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장로 또는 장자의 장(長)이라는 것은, ‘머물지 않고 무한성장해가는 그 자체가 나이기 때문에 우린 걱정할게 없다. 어떠한 모습으로서의 현상이 나타나든 말든, 우린 무한성장해간다’는 의미입니다. 생명 그 자체이지, 모습을 얘기한 게 아닙니다.

문사수(聞思修)하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법문 들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관건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를 앞세우고, 내가 내린 결론을 앞세운 사람은 ‘듣지 않는’ 사람이에요. 경험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법문이 잘 들리다가 어느 날 안 들릴 때가 있지요? 이유는 나의 결과가 바빠서입니다. 나를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결론이 딱 나와 있는데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듣는다는 건 뭡니까? 나를 비우지 않고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미 가득 채운 사람은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 다음에 자기가 내린 답과 비교를 합니다.

결국 듣는다는 것은 부처님과 함께 간다는 겁니다. 부처님이 우릴 향해서 ‘부처님생명으로 살라’고 하시는 메시지를 듣는 겁니다.
부처님생명으로서, 무한능력으로 성장해가는 주인공으로서,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나의 생명내용인 ‘부처님의 무한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문사수의 시작과 끝입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여여법사님_P1450661.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조회 수
281 대중법문 나와 세상의 관계 file 9455
280 대중법문 우리가 문(聞) 사(思) 수(修) 해야 하는 이유는... file 9330
279 대중법문 먼저 베풀고 볼 일이다 file 9077
278 대중법문 부처님의 회향, 아! 감사합니다. 8938
277 대중법문 지금 무슨 마음을 잡수십니까? 9000
276 대중법문 새로운 세계, 그 창조의 순간 9016
275 대중법문 주제를 알라는 말의 속뜻 9836
274 대중법문 업장소멸의 지름길, 염불! 9957
273 대중법문 칭찬의 가락에 춤추고, 칭찬의 노래를 부르자 file 10354
272 대중법문 “인연입니다” 10184
271 대중법문 변화變化는 말장난이 아니다 file 9465
270 대중법문 지혜의 종교 file 10037
» 대중법문 먼저 생명의 자리에 앉으라 file 10088
268 대중법문 부처님의 회향(廻向) 9468
267 대중법문 자기에 대해 정직한가? 9468

g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