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믿음[信]이란 성(誠)으로 인(人)과 언(言)을 따른다고 말합니다. 말을 바꾸면 사람의 말이 신(信)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점은 ‘말하고 믿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더욱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으며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할 수 있다면 진실한 자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따로 악의(惡意)가 없어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거나 말과 행동이 같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단순히 약속을 어겼거나 언행이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용을 잃는 것이 아니라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실행할 수 없는 말을 했기 때문에 신용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용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겸허한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알고 살아간다면 딱히 대인관계에 있어서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일차원적 관계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보다 복잡한 무한 차원의 관계로 얽혀 있기에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몰록 생기게 되는 미덥지 않는 마음이 해소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점점 불신(不信)이 깊어지고, 그 일은 곧바로 다른 일에도 불똥이 튀게 됩니다. 즉 한 사람에 대한 사소한 불신감이라 하여도 그것을 별스럽게 여긴다면, 그 불신감은 내재적 집착이 되어 점차 세상을 대하는 그릇된 편견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불신감은 곧바로 문제를 인식하고 지혜롭게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 내린 바 있습니다. 즉 사람이란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살아가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동물과 달리 단순한 상호 의존적으로만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라, 타인과의 크고 작은 이해관계를 맺게 되고, 그로인하여 내재된 욕망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수많은 문제가 파생되어 삶이 복잡하게 전개되어 갑니다.

이렇게 사회에서 표출되는 모든 문제 현상은 복잡하고 난해해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각기 지니고 있는 생명의 욕구(자유로움과 평등하게 대접 받고자하는 마음)가 왜곡되거나, 무시당하거나, 과대 포장되었을 때 야기되어지는 현상임을 알게 됩니다.



법회에서 우리 생명의 참된 진실은 오직 ‘부처님생명!’이라고 법문 듣고 있습니다. 부처님생명이란 절대생명인 까닭에 조건에 의해서 생명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생명이 스스로 조건을 선택할 뿐이라는 내용을 법우님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자신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임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그 믿음으로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가게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불자가 되길 발심하였다면 그 순간부터 부처님의 무한능력을 상속받기에, 그의 삶은 언제나 자유롭고 안락하게 인생 여정이 전개됩니다. 이것이 불자들이 입는 가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생각해야 할 점은 불법을 믿고 불자의 삶을 선언하는 순간, 모든 조건들이 내게 유리한 쪽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대적 조건은 바뀐 바가 없는데 어떻게 자유롭고 안락한 인생을 맞게 될까요? 그것은 바깥세상을 인식하는 내 맘이 바뀌어졌기 때문입니다. 보고, 듣고, 인식하는 의미가 달라져서 그렇게 세상을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발심(發心)을 한 불자가 만약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분쟁이 일어나거나 혹은 불신의 마음이 생기게 된다면,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과 정진을 지성스럽게 가져야 할 것입니다.

먼저 상대방의 그릇됨을 탓할 일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수준과 믿음의 정도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짝!’ 손뼉소리는 양손바닥이 서로 부딪혔을 때 나는 소리입니다. 아무리 세게 쳐본들 한 손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다른 한 손과 어떤 인연으로 만나느냐가 제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지금 타인이 자신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여 갈등하고 있다면,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나의 이기심과 충돌되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스스로의 마음 상태에 따라 상대방이 착하고 아름다운 분으로 존재하거나, 혹은 볼품없는 존재로 전락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태도가 의심스러울 때는 우선 나의 마음속에 혹여 허망한 집착이 없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아, 나에게는 항상 남을 부처님생명으로 보고 대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서 그런 태도를 느낄 때는 얼른 감사의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끝없는 과거생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어온 업장(業障)이 저장되어 있어 누구도 그것(마음속의 어두운 그림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고통스런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부처님생명임을 잃지 않고 정진을 모시게 되면, 그로인해 많은 업장이 소멸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계기를 준 상대방을 은인(恩人)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은인에게 어찌 감사의 마음을 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문의 내용은 이해가 되지만, 현실에 있어 감내하기 쉽지 않고, 맘과 같이 행동이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피하지 말고 상대방과 마주하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히 밝히는 것도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움과 원망으로 대하지 말고, 오직 상대방의 밝은 삶을 기원하면서 만나셔야만 합니다.

모든 문제의 발단은 자기생명의 욕구가 왜곡되거나, 무시당하거나, 과대 포장되었을 때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서, 중생생명을 대접하지 않고 오직 부처생명만을 대접하겠다는 마음으로 만나신다면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명성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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