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 요즘 '절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곤 합니다. 자녀에게 운동처럼 시키는 부모도 있고, 심지어 불자라고 자처하는 분도 '절운동'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들었습니다. 불가에서 하심(下心)으로 하는 절과 타종교인 혹은 무종교인이 하는 절운동과의 차이점은 무엇인지요?

<들음>
‘돈을 잃음은 조금 잃음이요, 명예를 잃음은 많이 잃음이요, 건강을 잃음은 전부를 잃음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에게 있어서 건강은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모든 종교에서는 상대유한의 생명을 벗어나서 영생(永生)을 누릴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영생의 의미가 단순히 육신생명을 연장시키는 의미가 된다면 그것은 궁극의 가치 실현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성불(成佛)이라고 표현하며, 정토신앙을 하는 사람들은 극락왕생(極樂往生)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기 종교 안에서 행해지는 그 어떤 방편도 이 절대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일 뿐이지 방편이 목적이 될 수 없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불가(佛家)에서 일상정진에서 행해지는 참선·염불·간경·절 등 모든 수행은 바로 우리의 진실생명 내용을 확립시키기 위한 방편(方便)입니다. 따라서 각기 수행 방편들을 의지하여 마음을 진실하게 집중하여 정진해 나아간다면 큰 진전이 있게 되어 마침내 진리를 깨달아서 절대안심(絶對安心)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참생명 자리로 인도하는 방편 수행법이 본래 수행의 목적을 실현하는 의미를 떠나서 현실에 안주하는 수단으로 오인되면서 그 방향이 잘못 진행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수행을 하게 되면 머리가 좋아지고, 건강해지며,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등 많은 이야기들이 회자되어지면서 여러 가지 방법론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절을 하는 궁극의 의미는 질문에서 말씀하셨듯이 하심(下心)을 이루기 위함에 있습니다. 대승불교에 있어서 ‘하심’의 의미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온(五蘊)이 나[我]로 인식되어진 존재로서는 생사(生死)의 고통과 인생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반야의 법문을 통해서 끊임없이 설해지고 계심을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즉 오온으로 인식되어진 나는 진실로 내가 아니며 허망분별로써 인식되어진 나이며, 실답지 않는 나임을 지혜로서 바르게 보라고 역설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온이 진실로는 공(空)함을 체달했을 때 우리는 중생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서 참생명의 절대 주체자로 살아가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하심이란 오온으로 인식된 이 몸뚱이를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두어서 절대생명을 온전히 드러내는 수행입니다. 그러므로 절을 지성으로 하게 되면 처음에는 그 깊은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점자 진실한 마음으로 정진을 깊게 해 나아가면서 점점 교만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마침내 겸손과 순일한 마음에 나아가 참생명에 대한 깊은 믿음이 일게 되고 또 더 나아가서 다른 모든 이들을 부처님으로 여기고 그들을 예경하는 단계까지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 수행도 궁극에 가서는 우리들의 참생명을 회복하는 수행방편임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의미로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만을 목적으로 하여 실시되어진다면 점점 그 궁극의 본질과 다른 결과에 맞이하게 됩니다.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절이란 온 몸을 땅에 던져서 하는 운동이기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신 운동이 됩니다. 그러한 까닭에 108배만 하게 되어도 상당한 운동량에 이르게 되어 열량 소모가 있게 됩니다. 복부비만과 다이어트에 효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가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몸과 정신을 이완시키며 혈액 순환과 기(氣)의 소통이 원활하여 성인병 예방과 치유에 탁월한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당면한 병의 치유와 몸 관리를 위해 더 ‘절운동’에 치중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건강과 치병에 목적을 두고 절운동을 하여 효과를 보았다면 그 사람은 수행의 방편으로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굳게 믿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절을 통해서 육신의 생명에 집착함을 떠나고 나아가 모든 생명을 공경하는 마음을 터득하고자 한 수행법이 오히려 자신의 육신에 애착하고 집착하게 하는 운동으로 전락하여 크게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절수행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절로써 부지런히 정진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유연해지고 편안해지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이 활용될 수 있는 도구로써 쓰여 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육신을 집착하고 오온에 대한 사견을 강화하는 경향으로 나아감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마음을 지닐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질 때까지 법사에게 지도 받아서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답변 : 명성明性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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