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이란 ‘지금의 마음 그대로가 부처’라는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입으로 염불한다는 것과 그 사람이 염불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염불이란 입으로 떠드는 게 아닙니다. 입으로 표현하는 것은 내 몸에 박힌 습(習)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자신의 생명전체를 오로지 부처로만 꽉 채우고 사는 사람이 염불행자(念佛行者)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마음이 오로지 부처일 때 염불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염불하고 있는 당사자가 따로 있거나 염불의 대상인 부처를 내 밖에서 구하려하지 않습니다. 유불여불(唯佛與佛)이라! 다만 부처가 부처를 염(念)하는 것이지, 중생이 부처를 염하는 게 아닙니다. 본래부터 부처인 내가 스스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 나의 참 생명 이름은 부처님생명이야!’ 이렇게 내가 부름과 동시에, 내가 듣습니다. 내가 나무아미타불 하면서 자신을 향해서 나무아미타불하고 있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것이 염불입니다.

염불하는 자와 염불 듣는 자에게 동시에 열리는 염불문(念佛門)은 어느 곳 어느 때나 만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염불문에 들어선 사람은 수많은 세상의 차별경계를 감사와 찬탄으로 가득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무엇보다 나무(南無)할 줄 알아야 합니다. TV를 보려면 스위치부터 켜야 합니다.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내 식으로 발길질을 한다든가, 바닥에 내동댕이 쳐보아야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TV의 작동 원리에 맞춰야 화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특별하거나 어렵지 않은 것이 나무입니다.

형광등을 켜고 싶으면 스위치를 올려야 합니다. 이것이 나무입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일지라도 스위치만 올리면 불은 켜집니다. 그 아이는 나무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성질을 내고 발을 굴러봐야 불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스위치를 올리듯이 세상사에 나무하기만 하면 되지 않을 일이 없습니다. 때문에 나무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수많은 성취가 기다릴 뿐입니다.

믿으십시오. 나를 다 맡길 때, 경험이나 지식과 같은 상대적(相對的)인 입장을 앞세우는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염불의 문은 열리기 마련입니다. 왜 그러한가? 염불문은 단순히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만나는 모든 현상들마다가 전부 염불문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열림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염불문(念佛門)이 있기에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비록 내가 지금 괴로워도, 그것은 괴로움으로 다가오는 염불문이 열리기 직전의 상황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즐거움이 다가온다고 해도 그것 또한 다른 염불문임을 염불행자(念佛行者)는 받아들입니다. 그런 상대적인 경계를 통해서 염불문이 열리고 있음을 알게 되므로, 괴로움이나 즐거움 모두를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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