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 “여기서 서쪽으로 십만 억 국토(國土)를 지난 곳에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극락”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곳을 향하는 출발지점에 대한 지적입니다. 곧 ‘여기서’가 무엇을 뜻하는가가 극락에 이르는 관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말하자면 ‘여기’란, 일상적인 삶으로서의 존재감을 느끼는 상대적(相對的)인 세계를 가리킵니다.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다는 확신을 근거로 해서, 사람이나 사물 또는 사건과 대립(對立)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렇게 언제 어느 곳에서나 자신을 중심에 두지만 잠시도 편안치 못합니다. 상대적인 나로부터 괴로움이 생겨나기에, 그나마 견디고 살려면 이를 악물고 살아야합니다. 때문에 참고 살아야한다는 뜻으로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는다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참으면서 괴로움의 근거를 제대로 알게 되면, 바로 그 자리가 극락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십 만 억 국토를 지난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십만 억 국토란 지구상(地球上)에 실재하는 그런 땅이 아닙니다. 이는 곧 셀 수 없이 많은 온갖 상대적(相對的)인 관념들의 세계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나를 삶의 중심에 두는 한 언제까지나 유한(有限)할 따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기에 끝없이 무엇인가를 덧붙이기 바쁩니다. 아무리 많이 붙여도 언젠가는 사라질 유한인데 말입니다. 십만 억 국토란 유한을 추구하는 나의 상대적인 한계를 가리킵니다. 해서 그런 상대적인 세계 너머 그대로가 극락(極樂)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유한한 상대적인 존재가 끝나는 자리가 곧 극락이 펼쳐지는 자리가 됩니다. 그래서 ‘서(西)쪽’이라고 이르는 것입니다. ‘서(西)쪽’이 얼핏 동서남북의 방향으로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그런 단순한 뜻에 그치지 않습니다. 마치 해가 서쪽으로 지고나면 사라지는 것과 같이 유한적인 존재가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상대적인 세계인 십만 억 국토를 다 살아보고 나서 극락이라는 절대세계를 내 생명의 원리로 받아들이겠다”고 한다면, 이보다 더한 거짓말도 없을 것입니다. 그건 일종의 취미 생활에 지나지 않습니다. 간혹 “늙고 나면 다음에 자식 다 여의고 아무 할 일 없을 때, 불교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을 봅니다만, 정말 그 때가 되면 할 일이 없을까? 지금은 젊어서 또는 바빠서 다음에 한다고 하지만 언제쯤이나 그게 가능할까? 아마 결코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설정한 상대적인 행복을 추구함과 동시에 생사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상대적인 것은 유한적일 수밖에 없고, 유한적인 것은 반드시 죽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사회적이든 육체적이든 간에, 죽음이라는 현상을 통해서 끝내 소멸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상대유한(相對有限)이 끝나는 자리 그대로가 극락이므로, 극락은 역연(歷然)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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