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 문구를 처음 본 것은 17년 전입니다. 당시 아들아이가 네 살이었는데 지금 21살이 되었으니 문사수법회는 아이와 함께 늘 제 곁에 있었던 셈입니다.

스무 살 무렵 불교관련 서적을 접하면서 절에 가기보다는 책을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어깨너머로 듣곤 했는데, ‘부처님 법 만나기 백천만겁 난조우’라는 말씀처럼 법문을 직접 듣게 되기까지는 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이가 네 살 되던 해 커다란 사건이 생겼을 때, 마침 월간 ‘불광’에서 여여법사님의 전화번호를 만납니다. 그로부터 17년 동안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이라는 문구를 수시로 접하지만 그것은 먼 나라의 말씀처럼 내게 닿지 못합니다. 시간이 흘러 분노와 수치심과 가난이라는 단어를 익숙하게 한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5개월의 사이를 두고 이 세상에 오직 ‘사랑’이라는 단어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친정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두 사람의 죽음 앞에서 저는 다시 망연자실하면서 살아있다는 것과 죽음이라는 것의 차이를 온 몸으로 느끼게 되지요. 그 후 오십견이라는 우습지도 않은 병명에다 우울증마저 보태 몸은 점점 망가지고 정신은 황폐해져 갔으며 오랜 친구가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고 절교를 하면서 우울증은 극에 달했습니다. ‘친구는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다는데 나는 왜 부처님 안에서 이렇게 평안하지 못한 것일까?’

죽음이 타인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일 수도 있음을 알아가던 어느 날 하나밖에 없는 아들 녀석이 손가락을 세 개나 봉합 수술해야 할 만큼 큰 사고가 났음에도 어미인 제게 연락하지 않아 보호자가 없어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지도교수님의 전화를 받고 병원에 달려갑니다. 아이를 보는 순간 철철 울다가 생각합니다. ‘이렇게 아플 때 아이는 왜 내게 연락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엄마가 걱정할까봐 그랬을 거라고 하지만 그 순간 저는 저의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마흔에 저를 낳은 엄마는 늘 병석에 누워 계시다가 외가에 치병을 가셨습니다. 엄마 없이 홀로 세상에 내팽겨진 것 같았던 네 살의 어린 아이. 나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의 분노와 시기와 질투. 혼자 밥 먹고 혼자 일어나야 하는 외로움에 진저리 친 이면에 엄마가 죽을까봐 두려움에 떨던 어린 시절이 지금도 여전히 맞물려 돌아가면서 그 업식業識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삶을 지배당했음을, 지금의 모든 것은 나의 업식이 빚어낸 결과임을 아이가 다친 것을 계기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병든 엄마가 돌보지 못한 어린 시절의 저를 바라보며 그렇게 자란 ‘나’가 아이를 그렇게 키웠음을 인식하고는 굉장히 놀랐고 대단히 슬펐습니다. 나의 삶은 누가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고 거기에 매달려 살았음을, 무명의 바람이 불어와 본래 있던 청정을 몰아내고 주인처럼 자리잡고 오랫동안 나를 지배하여 마침내는 죽음까지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깨달은 순간 놀랍게도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이 떠올랐습니다.

엄마와 가족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저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의 뿌리가 자라지 않아 경전을 수지 독송하면서도 부처님 곁에 온전히 머물지 못했습니다. 왜 생겼는지 그토록 궁금했던 우울증은 바로 ‘나 답지 못해 생긴 병’이었습니다. 청정했던 성품에 어린 시절의 오염된 분노와 시기와 질투가 번뇌를 일으켜 주인 행세를 했던 것이지요.

금강경에서 이르신 “과거는 지나갔고, 현재 또한 계속 흘러가니 잡을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 잡을 수 없다(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는 게송이 눈앞을 스쳐가며 그간 궁금했던 몇 가지 일들이 저절로 이해되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초등학교 2학년때 교탁 위의 꽃병을 놓아두고 정물화를 그리는 시간에 도화지를 바라보며 울었던 일입니다.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강박 속에 똑 같이 그릴 수 없다는 두려움과 절망감은 두고두고 저를 괴롭히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저의 내면을 고스란히 비춰주는 거울이었으며 평소 제 생활습관에서 궁금히 여기던 것들의 의문이 풀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우울증이 거짓말처럼 호전되어, 그동안 불을 낼까봐 무서워 좋아하던 커피도 못 마시고 국조차 끓이지 못하던 저는 부엌에 들어가 여유롭게 커피를 끓여 마실 줄 알게 되었지요. 마음도 예전과 다르게 놀라울 만큼 평온해졌습니다. 우울증은 아주 무서운 병입니다. 잊고 싶은 과거는 물론, 잊으면 안되는 시간들도 몽땅 앗아가버리니까요.

‘단지 업식 하나를 이해했을 뿐인데 깨달아 버리면 어떻게 다를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있던 9월의 어느 날, 순식간에 밀어닥치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일이 생기면 주저앉아 당하였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아 정진원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마침 주말에는 초하루법회가 있고 다음날에는 등관법사님의 법사부촉식이 있다는 말씀에 마음이 급해진 저는 막차를 타고 광주역에서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가 초하루 법회 시간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법회 시간에 앞서 법사님께서 차를 한 잔 주시며 그간 제게 일어난 일을 조용히 들어주셨지요. 곧 법회가 열렸고 명성법사님께서 담양에 정착하여 겪으셨던 억울한 사정을 참아내셨던 일화를 들려주셨는데, ‘참아서 지은 법당’이라는 비유법으로 인내와 함께 ‘억울한 일을 밝히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 날 고단한 막차를 타고 밤새워 달려 법회에 참석한 제 자신을 찬탄했습니다. 문사수법회 법요집 어딘가에 씌여 있던 ‘법회가 열리거든 불길을 뚫고서라도..’ 라는 구절을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날, 10월에 수계식이 열린다는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수계신청을 하였지요. 실로 긴 시간을 돌아 문사수법회를 진정으로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1박2일간의 수계전교육을 통해 ‘계를 왜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배우며 계의 법 즉, 계법戒法에 의하면 오직 자성이 청정한 것에 기인하고 계의 정신은 오직 발심한 자에게 생긴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 수계를 받는 것은 내가 잘 나서 받는 것도, 못 나서 받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살고자 받는 것이며 계를 받는 순간 부처님께서 ‘나 닮아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드디어 수계식에서 회주님으로부터 ‘연정然淨’ 이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이로서 문사수법회를 만난 지 17년 만에 진정한 법우가 된 것입니다.

17년 전 겨울,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질려 매일처럼 귀찮게 전화 드렸던 여여법사님, 정신법사님...반야심경을 가르쳐주시며 언제 어디서나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등관법사님...법회를 통해 만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지켜봐주던 대구 성화법우님, 부산의 보여법우님, 어둠 속에서 울지도 못할 때 힘을 주신 명성법사님, 이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수계식에 참석하기 전에 어려워서 숨겨두었던 회주님의 금강경법문집인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을 읽었습니다. 예전에는 도통 모르던 그 말씀이 분명이 들렸습니다. 법문 듣는 이 기쁨... 큰 스님의 한량없는 사랑에 감사드리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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