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바니 세바네
 

나일 수 밖에 없는 건망증

혜심 안정균 2009.09.09 조회 수 3575 추천 수 0
어느날 동료가 제게 물었습니다.
요즈음 자기는 부쩍 건망증이 늘었다고 합니다.
연구원에서 일반 직종으로 직업을 바꾼 동료의 말입니다.
40이 넘어서고 부터 부쩍 책을 봐도 글이 안들어오고
잘 까막는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제게 건망증이 늘지 않았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저는 30년 전부터 심한 건망증을 달고 살아서
요즈음은 오히려 예전보달 덜한데..."
했습니다.

사실 저의 건망증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학교 공부가 끝나면 오후 내내 축구나 야구를 하며 살았는데
당시 국민학교 시절
저의 건망증은 상상을 불허합니다.
아침에 어머님에게 내 책가방하고 교복이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어머니는
"야 이놈아 책보따리 또 축구 골대 밑에 두고 왔냐?"
하시며 호통쳐서 놀라
새벽에 집 옆에 있는 학교에 뛰어 가보면
아침이슬에 물먹은 교복이 축구 크로스바에 걸려 있고
가방은 기둥옆에 이슬이 총총 맺혀 있곤 한 적이
제 기억으로도 서너번 됩니다.

중학교는 학교가 멀어서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버스에서 정신없이 친구들하고 놀다가 책가방 버리고
그냥 내리기가 일쑤였으니.
그리고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니면 반드시
집에 돌아올 때는 빈손.

이런 제게는 심부름도 시키지 않습니다.
쓰레기 버리는 날에는 연탄재 들고 나가서 그냥돌아오고
콩나물을 시키면 딴 것을 사오고... 등등
무엇을 시키면 십중팔구는 다른 것을 가져오거나 사옵니다.
그래서 집에서 막내인 저는 지금도 위의 형제와 누님이
일을 다 합니다. 물론 윗분들의 부지런함도 있으시구요.

요 근래에는 회사 ID를 어제 잃어버린 줄알고는
명광 법우와 미향법우님께 법당과
어제 먹은 술집에 한번 찾아 보라고 난리를 피고는
오후에 서울에 올라와서도 내내 ID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데
지금 집에 돌아와 가방을 열어본 혜복화 법우님이
웃으며 말하네요.
"요즈음은 잃어버려도 끝내는 돌아오네!"
"여기 ID 카드 있네요."

무안하고 쑥스럽다.
그제 명광법우님 아버님과 금강경강좌를 듣고
법사님과 보해, 명광, 명광법우 아버님, 그리고 저 해서
5명이 밤늦도록 법담을 나누고 헤어졌는데
그 이후 ID 카드가 사라져버렸으니....

이렇듯 많은 건망증을 가지고
집을 찾아가고 연구를 하고 염불을 하는 것 보면
신기하기만 합니다.

원래 잊으며 사는 것이 삶인지 모르겠습니다.
함께 지내온 건망증이 나 임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가끔 나이 먹은 것을 한탄하며
자신의 건망증 이야기를 종종합니다마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 보다
잊어 가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기억은 파편이고 잊은 것은 도도한 마음의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파편 파편을 지니고서 기억한다 또는 잊었다는 말을 합니다.

하루를 복귀하여 A4지 한장도 적지 못하면서 기억을
말합니다.
앞장을 읽고 뒷장을 읽으면서 앞장을 까먹었다 당황합니다.
우리가 배우고 기억하는 많은 것들이
잊어야 할 것들이고 지워야 할 것들일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념념이 상속하는 생각은 본성이 번뇌여서
무한한 업의 파노라마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이 생각을 골똘히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다른 생각으로 넘어갑니다.
이런 많은 생각과 기억들 보다는
일념이라도 일 찰라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내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삶을 꾸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라는 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잊어버려야만 하기에 잊어버리는 것이고
잃어버려야만 하기에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삶의 근본을 잃어버리고도 잘 삽니다.
삶의 원천을 잊어버리고도 잘 삽니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 지를 모를 따름인 것 같습니다.

작은 선근 공덕으로는 태어나지 못하는 곳,
오직 일념으로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부처님의 명호를 잡아야만 태어나는 곳,

그 곳만은 잊거나 잃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할 뿐입니다.
그래서 입에 달고 살기를 기원합니다.
그 곳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잊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일심불란으로 십념이면 태어난다는 말씀을 잊지않기를 기원합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명호를 잊지 않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제 앞에 나타나신 모든 산하대지와 일체유정들께서
백천억 석가모니부처님의 화신불들임을
잊지 말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법신부처님이신 아미타 부처님이심을
잊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건망증도 '나'입니다.
무상법에 따라 움직이는 '나'이기 때문 입니다.

감사합니다.
건망증으로 인해 의심하지 않습니다.
건망증으로 인해 의지합니다.
그래서 삶이 더욱 풍요해집니다.

감사합니다. 나무 건망증보살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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