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바니 세바네
 

나의 생활, 문사수

김 준 2009.09.16 조회 수 4051 추천 수 0

문사수법회에 다닌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 자리에서 문사수와 인연을 맺기 이전과 이후의 저의 생활에 대한 변화와 느낀 점, 아직 고민하고 있는 생각들을 돌이켜보면서 여러분께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사실 문사수법회를 다닌 이후의 제 변화라면 열심히 고민하며 살고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불교에 대한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류 종교란에는 그날 기분에 따라 ‘종교 없음’ 혹은 ‘불교’라고 써넣었습니다. 그 정도로 저는 지금까지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도 없이 지내왔습니다. 단지 절실한 불자이신 부모님을 조금이나마 마음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 불교에 관심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직장에 근무하면서, 불교 모임에 가입하여, 경전 읽기 등 여러 가지 모임에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게 경전은 매우 어려웠으며, 이해되지 않는 다소 황당한 내용도 많았습니다. 물론 주위에 있는 법우들 중에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이해도 무척 잘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법우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경전 공부와 제 생활이 따로였습니다. 단지 여러 가지 모임 중에서 또 하나의 모임으로서 지내온 것입니다.

 

그러던 중, 법사님의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와 함께 직장에서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내용들 중에서, 딱 한가지 제게 전달된 것이 바로, 불교는 믿음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말씀 중에서, ‘믿음’이라는 단어 하나에 지금까지 막연히 가지고 있었던 ‘내가 깨닫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듣게 되었고, 그 당시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엄청난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는 막연히 ‘내가 깨닫는 것이야,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 적어도 출가할 수 있는 용기는 있어야 가능하지. 그러니 이번 생애에 깨닫는 것은 불가능 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부처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출발한다는 법문에,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겠다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느낌으로 잠깐 문사수법회에 얼굴을 내비치었다가,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항상 우선 순위에 밀려서 한동안 나가지 않았습니다. 저와는 달리 꾸준히 다니고 있던 아내도 ‘언젠가는 열심히 다닐 꺼야’라는 생각이었는지, 특별히 제게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법회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항상 이야기해주며, 나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아이를 데리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98년 11월에 대전법회에서 수계받을 때, 아내가 저도 함께 신청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수계받을 때, 여러가지 지켜야할 계율에 대해서 약속을 선언하였고, 거듭 태어나서 새롭게 출발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습니다.

특히 법명 받을 때, “지금까지 지내온 중생 생활은 모두 청산하고, 이제부터 참생명으로 산다”는 한탑 스님의 선언적인 말씀에 감정이 복받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탑스님께서는 항상 ‘나 잘났다’는 생각이 들면, 얼른 “나무아미타불!” 하라고 법문하십니다. 처음에 제가 그 법문을 들을 때는 ‘나 잘났다’는 식의 행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많은 양보도 한 것 같고, 지금도 양보하려고 노력하고, 상대방과 다툴 일이 있어도, 내가 참도록 노력하고, 또는 마음은 언짢아도, 겉으로는 잘 대해주고, 그 언짢은 마음도 시간이 지나가면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법문을 들으면서도 ‘난 그렇지 않은 것 같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곰곰 나의 생활 속을 깊이 들여다보니, 온통 ‘나 잘났다’는 생각 외에는 존재하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 잘났다’는 마음에서 모든 것이 진행된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효과적인 사회생활을 위해서 겸손한 것처럼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내 마음속의 그러한 생각을 지금까지 무시하고 지나쳤던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스스로 생각해도 치사하기 짝이 없는 장소에서도 ‘나 잘났다’는 마음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소개한다면, 지난 겨울에 아이와 함께 스키를 타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스키를 타고나면,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스키 보관함에 스키를 맡기는데, 콘도마다 가격이 약간 다르고, 스키를 맡기고 찾는데 있어서 운영하는 방식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2일째 되는 날, 스키를 맡기기 위해서 줄을 섰습니다. 제 앞에 여러 아주머니들이 애들과 함께 스키를 맡기려고 줄을 서 있었고, 반납은 어떻게 하는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제 마음속에서는, ‘아줌마들 그냥 조용히 있지, 뭐 별로 알지도 못하면서…’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여하튼 완전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속으로 비꼬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으며, 속으로 마구마구 나무아미타불 한 것이 기억납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특별히 똑똑해서도 아니고 단지 하루 먼저 온 것을 가지고 뽐내고 있으니까요. 제게 이 발견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전에는 그래도 남들보다 인간적으로 잘 대해주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혀 솔직하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그때는 그냥 지나쳤던 것이지요. 이렇게 ‘나 잘났다’는 제 마음이 즉시 발견된다는 것이 저의 변화라면 변화입니다.

 

또 하나 제가 법회에 나온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의심을 가진 것 중에 ‘나무아미타불’이 있습니다. 염불이 신비한 영험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인데, 왜 ‘나무아미타불’만 하면 되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이 처음 제게는 외국어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염불 정진할 때, 마음속으로 한번은 나무아미타불, 또 한번은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그나마 뜻이 좀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외국에서 ‘Hi’ 라고 이야기했을 때, 한국말로 ‘안녕’이라고 할 때의 마음과는 다르지만, 자꾸 사용하면 같은 느낌을 같게 되는 것처럼, ‘나무아미타불’을 자꾸 부르면 어색한 단어가 아닌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과 같이 느낌이 오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 법문을 듣고 나의 생활을 스스로 생각해보면서, 상대세계 속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어나지 못함을 발견했습니다.

상대세계 속에 존재하는 내가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서 참생명을 드러내보겠다고 접근했지만, 가능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염불(念佛)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나 잘났다’는 생각에 대한 반사적인 염불이 아니라, 매달릴 수밖에 없는 절실한 의지처로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생활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일심(一心)으로 나무아미타불을 하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육체가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인데도,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기침이 자주 나면서, 기침 중에 피가 약간 섞여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요즈음 직장 생활이 무척 바빴고, 너무 피로했어, 오래 전부터 폐에 이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청나게 밀려왔으며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며칠 동안 계속 공포속에 있으면서도 나무아미타불은 별로 생각나지 않고, 두려움만 있었습니다. 며칠 지나자 그러한 현상이 저절로 없어졌고, 그에 따른 공포감 역시 감쪽같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당시의 느낌으로 재현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다시 또 예전과 같아진 것입니다.

그러면, 왜 부처님 말씀을 믿고 따르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아직 생사(生死)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미처 못했지만, 꼭 죽음이 아니라 할지라도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생활에 대한 부자유 때문입니다. 항상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쫓기고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법회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불교가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어떤 때에는 참 쉬웠다가, 어떤 때에는 무척 어렵다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이 판단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분석하고,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판단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불교의 가르침이 모든 것에 이때는 이렇게, 저 때는 저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한다면 차라리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고민이 있어서 은근히 법사님의 어떤 결정을 기대하면서, 여쭈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법사님께서는 특별히 ‘이렇게 하세요’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그렇게 판단한다면 그렇게 하세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그때는 제가 기대하는 속 시원한 답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고개만 끄떡끄떡하고 끝났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당시는 좀 답답했습니다.

 

그 이후, 법문을 들으면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궁금증을 가지고 법회나 경전공부에 참석하면, 대부분의 의문이 풀렸습니다.

꼭 그 의문에 대한 이야가 나올 때도 있지만, 나오지 않을 때에도 대부분 적용되었습니다. 상대를 상대로 두지 않고 부처님생명이라는, 울타리가 없는 한생명이라는 자리에서 판단하여 모든 것에 적용하는 것이니까요.

 

언젠가 경전공부하러 차를 몰고 가는데 ‘초보운전’이라고 쓰여진 차의 뒤에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보통 때는 피해갔을 터인데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해서, 그냥 그 뒤를 따라 가게 되었습니다. 짜증이 나면서 동시에 나무아미타불을 중얼거렸습니다.

그런데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에 문득 ‘만일 초보운전이라고 붙이지 않고, 왕초보식으로 위험하게 운전한다면 뒤에 가는 내가 얼마나 위험할까? 그나마 붙였기에, 내가 미리 조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니 초보운전 하는 사람이 참 고마운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직장 출근에 늦을 때면, ‘에이’ 하면서, 쌩! 하고 추월하는 것이 또한 제 모습입니다. 참으로 저로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나무아미타불할 수밖에는요.

 

지금까지 몇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만, 무엇보다 가장 변화된 나의 모습이라면, 문사수법회와 저의 생활입니다.

저는 어떤 모임에 가입하는 것을 참 싫어하는 편입니다. 물론 몇 개의 모임에 가입한 것도 있고, 자연히 가입되는 모임도 있지만, 제가 선택한 모임은 일반적으로 나를 강하게 구속하는 모임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사수법회는 제가 회원으로 가입된 어떤 모임이나 단체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사수(聞思修)가 곧 나의 생활이고, 나의 생활이 곧 문사수라고 생각합니다.

 

법우님.

우리는 땅속에서 조그마한 샘물이 솟아 나오는 웅덩이를 봅니다. 그 물을 손으로 휘저어 흙탕물을 만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조그맣게 샘솟는 샘물 주위부터 시작하여, 결국은 바닥까지 보이는 깨끗한 웅덩이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비록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구조가 상대세계 속에서 자기 중심적인 체계로 되었다 손치더라도, 법우님 한분한분이 이러한 샘물로써, 밝고 맑은 파장이 우리 주위에 퍼질 때, 언젠가는 우리 사회 전체가 부처님 참생명 자리를 모두가 확인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