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바니 세바네
 

망설이던 하루

안 정 균 2009.09.16 조회 수 3844 추천 수 0

2000년 2월 10일 토요일 날씨 맑음

 

오늘 갤러리아 백화점 지하도에서 전법활동을 하였다.

제법 쌀쌀한 날이었지만 토요일 오후여서인지 제법 사람이 많았다.

회사 점심 시간에 여느 때와 같이 운동을 하고 난 오후 1시. 하던 일을 마무리하려고 연구실로 올라가니 보원법우에게서 전화가 왔단다. 이미 짐작이 간다. 지난주에도 법우님들이 반야심경 법회 광고를 위한 전단지를 돌렸다는데, 나는 감기 몸살로 참여하지 못했다.

이번 주에는 법우지를 보내드리는 좌판을 펴기로 했다는데, 아프던 감기도 조금 낫고 참석 안할 핑계가 없다. 전법은 해야 하는데 길거리에서(?) 전법이라 생리에 안 맞는 것 아닌가 하면서도, 고생하고 계실 법우님들 모습이 눈에 밟혀서인지 발걸음은 백화점 지하도로 옮겨져 갔다.

혜원행법우님, 보행법우님, 명광법우님, 그리고 보원법우님이 긴 법당 좌판을 펴고 있었고, 큰 글씨는 지하도 내려오는 벽면을 도배하고 있었다.

‘부처님 생명을 드립니다’

‘월간 法友지를 보내드립니다’

‘선물드립니다(선착순 50분)’

명필 춘강선생님의 붓글씨가 벽면을 도배하고 있었다.

“아마 이 글도 표구하면 천만원은 넘을 거야”

라는 법우님의 말씀에 웃었다. 보원법우 말이 혜심법우님은 꼭 참석시키라는 정해법사님의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암튼 뺀질거리다 법사님께 찍혔구만. 하기 싫은 일은 절대로 안하는 내게도 법사님들의 말씀은 쥐약(?)이다. 어쨌거나 속으로 오늘은 안하던 짓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을 냈다.

 

직장에서 바로 퇴근한 길이라 꼴이 말이 아니다.

직장이 막노동판도 아닌데 회사 출근하는 내 모습은 좀 다르다. 법회 나올 때가 제일 깨끗한 편이니깐. 수염 안 깍은 지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놈의 수염은 기차게 잘 자란다. 거기에다 옷차림도 운동화에 길이가 길어서 접은 국방색 바지다. 이런 모습으로 서있다가는 오던 분들도 모두 도망갈 것 같아 법우님께 양해를 받고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갔다. 집이라야 100m도 되지 않는 거리지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사람 같아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꽃단장을 한다. 양복에 넥타이, 양복조끼, 롱코트에 절대 신지 않는 구두까지, 무장하고 나섰다. 이런 모습은 일년에 세미나 발표나 중요한 회의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보기 힘든 모습이다.

어쨌거나 오늘 사람 같단다.

 

근데 왠 걸.

옷 잘입으면 사람들이 오나.

아무도 내게로는 오지 않는다. 법사님들께서 호객하지 말고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염불하라고 하였단다. 그러나 잰걸음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보행법우님, 보원법우님. 사람 잡는 낚시꾼 같다. 혜원행법우님은 아주머니답게 조근조근 말씀도 잘하신다. 보원법우님은 거의 꾼(?)이다. 모시고 와서도 말 잘한다. 나는 뭔가? 거의 기도(?)보는 수준이다. 무게 잡고 옆에 섰다가 남자분들 중에 억지 쓰는 분 있으면 점잖게 한마디한다. 그분의 말투가 약간 수그러진다.

 

“사이비 종교단체 아니야. 이거!”

꼭지가 돈다. 이 나라에 참으로 종교가 많다. 그래서 폐해도 많다. 우리는 참된 부처님법을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가오는 분들에게는 사이비 종교집단으로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약간 씁쓸하다. 전단지와 법우지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쑥스럽기도 해서 한장도 나누어 주지 못했다. 법사님의 기다리라는 말씀에 위안하며 속으로 ‘나무아미타불’하고 왼다.

열반에 드신 불광사 광덕스님께서 1956년인가 57년에 전단지를 돌리고 계셨단다. 금강경 공부할 사람을 찾는다고 말이다. 그 때의 첫 만남 이후 40년 넘게 함께 공부해오신 사이였다는 한탑스님의 회고가 기억나서, 불현듯 참 스승이 되실 법우님을 만나고 싶다는 전법의 마음이 샘솟는다.

이런 마음이 드니 벽에 붙인 글씨가 눈에 거슬린다.

혜원행법우님에게 글귀를 바꾸자고 제안해본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함께 할 법우님을 찾습니다’

‘함께 정진할 법우님을 찾습니다’

‘죽어가는 불교를 살립시다’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의미를 전달했으면 좋겠는데, 벽에 붙어있는 문구는 어쩐지 불교 잡지사에서 월간으로 발행되는 잡지를 구독하라는 것같은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다음에는 좀더 친근한 말들을 생각해내서 여러분들이 우리가 전법(傳法)하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올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야겠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돌리는 전단지나 다른 종교단체의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전단지에 식상해진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낼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전법에는 꼭 필요할 것 같다. 남들이 하는 식으로 편하게 전법해서는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것이 머리 쓰는 건데, 이번에는 머리를 보태지 못했다. 다음 기회에는 부처님의 가피로 제대로 된 머리를 돌려야겠다.

 

어쨌거나 1시 정도부터 시작된 전법에 나는 3시부터 5시 반까지 서있었지만 결국 찾아가서 전단지 한장 돌리지 못했다.

그러나 한참 동안 설레며 기다렸다.

기쁜 마음으로 말이다. 나의 법우님을 찾아서… 광덕스님과 한탑스님처럼 평생의 도반이 되실 법우님을. 그래서 기쁘다. 다음에는 좀더 간절한 마음으로 거리에 나설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어릴 적 내 마누라는 어디서 날 찾아 헤매고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방황하고 계실 나의 법우님을 기다린다.

내 눈이 어두워 나의 법우님을 보지 못하고 있음을 안다. 내가 밝지 못하여 길을 보지 못함을 안다.

‘도반을 찾습니다. 눈 어두운 나를 밝혀주실 부처님이신 법우님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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