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바니 세바네
 

부처님의 원력으로

박기정·이기원 2009.09.16 조회 수 8001 추천 수 0

법회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집안에 큰 잔치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갓난아이에서부터 팔십 어르신까지 두루두루 모여있기에 그렇겠지요. 이렇게 건강한 법회가 존재하는 데에는 원담심 법우님(78세)과 보수 법우님(80세)의 역할이 무척이나 크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푸근한 미소로 젊은 법우들을 지켜봐주시는 두 법우님 덕분에 법당은 늘 중심이 서 있는 것 같고 고향처럼 따뜻함이 감돕니다. 귤을 사들고 두 분이 사시는 고양시 신원당 아파트로 향하자니, 문득 어릴 적 방학 때면 설레는 마음으로 외가댁엘 가던 생각이 납니다. 거칠고도 투박한 손으로 어린 손녀의 얼굴을 만져주시던 외할머니….

원담심 법우님도 그렇게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많은 날들을 살아오셨는데 지난날을 돌이켜 보실 때 어떠세요? 특별히 힘드셨다거나 후회되는 일은 없으세요?

 

후회되기보단 좀 안타까워. 지금 같지 않고 그때는 여자가 고생하는 세상이어서, 왜 좀 더 있다 태어나거나 나중에 태어나질 않고 꼭 그때 태어났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끔은 생겨. 난 고생을 좀 많이 했걸랑. 몸무게 47킬로에 80킬로 나가는 쌀 한가마니를 머리에 이고 다니며 장사를 했지. 밤 9시에 서울서 출발해 집에 오면 10시가 넘는 거야. 그때 와서 집안일 하고 1시에 잠들면 2시나 3시에 깨지지. 4시엔 일어나야 밥하고 애들 학교 보내는데, 시간마다 잠이 깨지니 살이 붙을 리가 있나. 그럴 때였으니까 그렇게 세상을 살았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부처님이 살려주신 거야.

장사할 적에 고생은 했어도 불보살(佛菩薩)님들께서 다 돌봐주신 덕분에 산 거고, 지금도 자식이 돌봐주니까 이렇게 먹고 사는 거야. 그러니 자식도 자식이 아니라 불보살님이지. 자식들이 주는 걸 부처님이 주시는 거로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

 

▶여자가 고생하는 시대를 사셨다고 하셨는데 원망심은 없으세요?

 

부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미운 마음을 갖고 살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를 힘들게 했던 일들과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살려진 거야. 같이 살면서 말도 못하게 부딪힐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저쪽은 선업을 많이 짓고 태어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안 속상해.

 

▶원담심 법우님, 어떻게 문사수법회를 만나게 되셨어요?

 

어느 날 아들 며느리가 법당엘 갔다왔다고 그래. 그때만 해도 난 절은 다 똑같은 줄 알고 또 법문이 좋은지 어쩐지도 몰랐지. 한번 가볼까 했더니 아들이, ‘어머닌 그냥 다니시던 절에 다니세요. 공부하는 데라서 법문이 어려워요’ 그래. 근데 며느리가 ‘가까운데 한번 가보시죠. 그냥 듣고만 계셔도 되요’ 그래. 그래서 일요법회에 처음 갔어.

법사님께서 법문하시는데 참 좋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거, 사람이건 짐승이건 생명체를 다 귀중히 애껴주고 부처님생명으로 대해야 된다는 그런 말씀이 맘에 와닿고 참 좋았어. 그래서 다음주에도 또 갔어. 또 좋아. 세 번째 갔어. 또 좋아. 근데 노인이 나 뿐이라 좀 쑥쓰러워서 어쩔까 하는데 젊은 법우님이 언니라고 불러줬어. 아줌마도 아니고 할머니도 아니고 언니라고 그러지 뭐야. 그 말이 날 붙들어 줘서 지금까지 다니게 된거야.

 

▶동년배 다른 분들처럼 경로당에 나가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법당에 나오셔서 백일정진하셨던 특별한 계기라도 있으세요?

 

사람이 암만 허덕이고 살아도 끝이 보이질 않어. 일흔두살에 처음 문사수법회에 갔는데 인제 고생도 다했고 아무것도 남은 게 없이 그저 가는 일 밖엔 없는데, 죽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가는게 올바른 길인지 알고 싶고 인생 마무리도 좀 잘하고 싶었어. 모든게 다 허망한데 허망하지 않은 뭔가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거든.

집도 가깝고 해서 법사님과 함께 날마다 정진을 모셨어. 그땐 그래도 젊었어. 지금은 기운이 없어서 그렇게 못하겠어. 이렇게 살은 있는데도 뱃속에 기운이 없어. 점점 더해. 갈 자리 찾는거야. 이거 얼마나 좋은 거야.

100일 정진을 하고 나니까 그냥 시원하고 뿌듯했어. 더 열심히 정진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들더라구. 그냥 살다 죽는 건 아무것도 아닌데, 그나마 정진을 하면은 잘했든 못했든간에 왔다가는 값어치는 있지 않나 생각해. 사는게 아니라 살려지는 거니까.

 

▶법우님의 일상 정진은?

 

다리가 아파서 바닥에선 못하고 침대에 걸터앉아서 하는데 1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예불, 반야심경, 나무아미타불 정근, 부처님찬탄, 사홍서원 순으로 매일 해. 맨 나중에는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다가 자는 잠에 임종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죽을 때에 나도 고생 안하고 살아있는 사람도 고생 안하게 데려가 달라는 의미로.

염불정근도 부처님의 원력으로 모시는 거지 내 힘으론 안되는 거야. 내 입을 빌어 말하지만 그건 부처님의 원력으로 하는 거란 생각으로 하면 염불도 할 수가 있어. 또 살다보면 좋은 일, 힘든 일이 있잖어. 그럴 때 내 힘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아야 해.

 

▶저희 엄마께선 늘 이담에 육신의 연이 다하고 나면 화장해달라고 하시는데 원담심 법우님은 어떠세요?

 

난 30대부터 화장해달라고 했어. 살기가 너무 힘이 들어서 죽어서는 깨끗하게 흔적도 없이 날아가고 싶었어. 납골당도 난 싫어. 뼈가 그 항아리 속에 묻혀있으면 무거워서 날아가지도 못하잖어. 화장하는게 제일 좋아.

 

▶슬하에 일곱남매를 두셨는데 대부분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 애착심이 많잖아요. 법우님은 어떠세요?

안된 자식한테는 자꾸 맘이 가고 염불할 때에도 자연히 떠올라. 내 몸은 으스러져도 너희들만 잘 자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키웠지만, 자식들한테 기대서 덕보겠다는 생각은 없어. 그리고 눈감는 순간까지 자식들을 걱정하면 안돼. 저희들 삶은 저희들이 사는 거니까.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잖어.

 

▶동년배 분들에게 전법하실 때 주로 어떤 말씀을 하세요?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을 일깨워주는 거 밖에는 없잖어. ‘나의참생명 부처님생명’을 하루에 열 마디씩 해보라고 얘기해주지. 또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고 그냥 나무아미타불 한마디만 부르라고도 그러지. 그게 잘 안된대. 나도 처음엔 잘 안되더라구. 그래도 자꾸 하다보면 입에도 배고 마음에도 배어 나온다구 얘기해주지. 알려준 대로 하면 다음엔 세 번씩 하라구 해.

 

▶법우님도 보기 싫고 미운 사람이 있으세요?

그럴 땐 어떻게 하세요?

 

아, 물론 있지. 그럴 땐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그냥 그대로 봐. 억지로 잊어버리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보는 거야. 내 눈이 삐뚤어진거야. 내가 밝지 못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야.

 

▶법회 만나시고 제일 감사하셨던 때는 언제신지요?

 

난 못된 마음이 참 많어. 그런데 법회 만나서 그나마 못된 마음이 많이 사라졌어. 그리고 의지할 데가 있어서 감사해. 외로움 없이 이렇게 목숨 다할 때까지 오로지 그저 정진으로 사니까 맘이 편안해. 대부분 바쁘다는 것도 부질없는 거에 끌려 다니는 거야. 쓸데없는 거로 바쁜 거야. 부처님 생각하면서 정진하는 거 외에는 더 없지. 바른 삶을 살게 해주신 법사님들이 고맙고 감사해.

 

법사님들을 꼭 살아계신 부처님이라고 부르시는 원담심법우님, 종교를 믿지 않는 셋째 아들한테 보여주실 거라며, 종교란 무엇인가 대목을 한시간째 베껴쓰시던 그 모습에서 진정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고양법당이 행신으로 이사한 작년 4월부터 천일정진을 모시고 계신 보수법우님.

 

▶염불하시고 나서 달라지신 게 있으세요?

 

매일 새벽 두시에 약수터에 가 물을 떠다가 법당에 와서 부처님께 공양올리는데 약수터 가면서도 염불을 해. 갈 때에는 반야심경을 외면서 가지. 원당역까지 7독을 할 수 있어. 거기서부터 약수터까지는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면서 가지. 불교를 믿기 전에는 고양이들이 부스럭대는 소릴 들으면 머리끝이 쭈삣쭈삣하고 무서울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무서운 거 하나 없어. 그 시간에 혼자 가도 쓸쓸하지도 않고 인제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

 

▶염불하실 때 잡념이 떠오르면 어떻게 하세요?

 

입에선 염불을 하면서도 쓸데없는 생각들이 자꾸 나지 뭐야. 그래서 더 열심히 염불해야지 생각하고 큰 소리로 염불해. 들어야 돼. 꼭 그 생각가지고 해. 그러지 않으면 잡념이 떠올라. 잡념이 있으면 소리가 안들려. 잡념이 있으면 부처님소리가 안들리니까 잡념을 없애기 위해서 부처님말씀 들으라고 하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해.

 

▶천일정진을 발원하시면서 어떤 원을 세우셨어요?

 

천일기도를 끝마칠 때까지만이라도 살아서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길 간절히 원하지. 그때까지만 살면 그만이야. 그 이상은 살고 싶지 않아. 원이 이뤄진다면 아주 불심(佛心)에 그냥 젖어사는 거지 뭐.

 

정진하는 말씀을 들려주시는 보수법우님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있습니다. 그 모습 속에 이미 원이 성취되었음을 느낍니다. 정진으로 멋지게 인생을 회향하시는 두 분의 모습에서, 귀한 날들을 그냥 흘려버리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젊음을 믿고 지금 해야 할 일들을 미루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마지막으로 연장자로서 법우님들에게 한말씀 해주시기를 부탁드렸더니, 부처님생명에 나이가 많고 적음이 없다시며 한사코 거절하십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법우님과의 좋은 시간을 허락해주신 부처님께 감사드리며 두 법우님께서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발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취재 정리:김영애 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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