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바니 세바네
 

마지막 법문

김 난 숙 2009.09.16 조회 수 3737 추천 수 0

어제는 호수공원에서 노을을 보았습니다.

하늘 가득해 감히 볼 수 없고 그냥 그 밝음과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만 있게 하던 해가 어느 순간 내 눈에 눈부신 모습으로 보여지더니 점점 선명해지다가 자꾸만 땅속으로 스미고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해가 진 세상은 너무도 평화롭고 그 속에 느껴지는 또 다른 이 편안함……

해는 어디로 갔을까 내 눈앞에서는 분명히 사라졌는데, 이런 것일까 삶과 죽음이란?

무척이나 무언가 많은 일들이 스치고 지나간 듯한 오늘입니다.

 

얼마 전 작은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하시고 내게 생겼던 걱정이 있었습니다.

내가 말하는 부처님생명에 대한 확신과 믿음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진정 부처님 법을 내 삶에서 받아들이고 있는가? 진정으로 내 삶과 부처님 법이 다르지 않다면 나는 그 옳은 것을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현실 속에서 보여지는 내 모습은 나를 너무도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작은아버지 병문안을 가면 항상 육체적인 고통에 힘겨워하시면서 결론도 없는 막막함에 휩싸여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몇 번이고 육신생명이 아닌 참생명의 영원성을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그 말은 입 속을 맴돌고 항상 의미 없는 거짓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제 모습을 보며 정말 내가 무얼하고 있는지 저 또한 너무도 막막했습니다.

문제가 문제다우면 답이 생긴다던 법문처럼 제 속에 넘치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았을 때, 법사님께 제 문제를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법사님의 찬탄에 힘을 얻어 어느 날인가부터 누워 계신 작은아버지께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작은아버지 병세는 계속 악화되어 혼수상태에 빠지는 등 여러 가지 현상들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참생명의 법문을 전해드리고 그 속에서 작은아버지도 평안을 얻길 바라는 일밖에는…

 

그렇게 얼마간 병원을 드나들며 함께 염불을 모시면서 죽음에 대한 얘기, 가족에 대한 얘기 등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린 시절 같이 살기도 하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제겐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지만, 그렇게 진지하게 많은 대화를 나누어 본적은 없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지난 월요일 경전공부를 마치고 늦은 시간 병원에 들렀습니다. 며칠간 조금 안정되셨던 모습은 사라지고 무척이나 힘들어하고 계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잠깐 들러서 얼굴 뵙고 염불 같이 모시고 가려던 제 계획과는 상관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병간호하시느라 지쳐보이는 작은어머니도 그날은 제게 병원에서 자고 가라고 잡으셨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다음날 일찍 법당에 가야한다는 염려가 있었지만, 그 자리를 뿌리칠 수 없어서 밤새 힘겨워하시는 작은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화요일 아침에는 병원을 나오는 제게 용돈을 주시면서 갈증나니 저녁에 쥬스를 사오라고 하셨지요.

그리고는 법당에 있는데 오후에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작은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힘겹게 쉬고 계셨습니다. 그런 작은아버지 옆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염불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 작은아버지는 숨을 거두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진정 삶과 죽음이 호흡지간임을 동의했던가?

무어라 표현하면 이 순간이 제대로 표현되어질까?

부처님의 말씀 그대로 삶에 비추어 내 일상과 함께 해야 함을 너무도 가슴아파하며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절대 현재라는 말씀, 그래서 이순간 이곳에서의 모든 것이 내 삶의 전부라는 말씀이 이렇게도 뼈저리게 실감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다음에’라는 단어는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누가 제게 이렇게도 다정히 법문해 줄 수 있을까요?

삶과 죽음은 분명 둘이 아닌데 살아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삶과 죽음은 둘입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도 살뜰히 보살피던 그 몸이 어느 순간 부정한 무엇이 되어버린 듯 가족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고, 만지거나 보는 것조차 두려워져야한다면 무엇일까요? 내가 아는 그 분은 무엇이었으며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하지만 한가지 확실해진 것이 있습니다. 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곳에서 염불을 해드리며 절대 놓칠 수 없었던 것이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몸이 작은아버지였을까? 절대 몸만이 그분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더 큰소리로 염불했습니다. 나보다 먼저 육신이 내가 아님을 체득하신 작은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기원드리며…

 

현상계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그대로 대긍정의 세계이며 조화로움임을 장례식이라는 통과의례를 통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남편 잃은 애통함에 끊임없이 서러워하시던 작은어머니, 그리고 염불공양을 모시려 와주신 모든 분들, 고인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농담까지 섞어가며 보내드리던 고향 분들의 정, 그리고 장례식장에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밤을 새워주신 분들. 그 모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에 오늘도 그 조화는 우리 속에 항상한 것이겠지요.

삼일장을 치르고 산소에 작은아버지를 모시는 동안의 모든 일들이 제겐 너무도 소중한 법회였으며, 그곳에 함께 한 모든 분들의 모습에 그대로 부처님의 법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따뜻한 몸을 통해 육성으로 작은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 모든 곳에 작은아버지의 모습이 가득하게 담겨있음이 느껴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처님의 법에 감사드리고 법문 듣게 일깨워준 법사님께 감사드리고, 작은아버지와 조카의 인연으로 만나 육신 버리시며 조카에게 온몸으로 법문주신 작은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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