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바니 세바네
 

참생명을 사는 그날까지

김 명 희 2009.09.16 조회 수 3730 추천 수 0

저는 지난 초파일에 문사수법회와 처음 만나게 되어 이제 3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법회에 제대로 참석도 하지 못하고 모든 것에 대해 어설프기만한 제게 수련법회의 참석은 많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편안한 일상의 생활에 젖어버린 제게 새벽에 일어나야 되는 부담감과[저는 아침잠이 많습니다] 편치 못한 잠자리는 더욱더 많은 망설임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고 캠프를 가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조카 둘을 데리고 수련법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어떤 기대를 하면서 도착한 정토사는 더욱더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감을 계속 불러 일으켰습니다.

인원에 비해 너무나 좁은 법당, 더운 여름에 샤워를 할 수 없다는 것과, 이 많은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잠을 잔다는 것인가? 하는 마음에 ‘편하게 그냥 집에 있을 걸’ 하는 생각이 가슴을 가득 메우며 그냥 차를 돌려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염불, 정진, 공양… 그렇게 더위와 함께 하루가 갔습니다.

 

“새벽에 너무 일찍 일어나서 힘들다”

“땀에 젖은 옷을 언제까지 입어야 하느냐?”

조카녀석들은 모기에 물린 곳을 보이며 무엇인가를 해주기를 바랬지만,

“앞으로 너희들의 앞날을 위해서 다 참고 견뎌야 되며 방학생활 중에 좋은 경험이니 참아라”

는 말로 일축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실은 제 자신이 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제가 편안한 것에 대해 얼마나 잘 길들여졌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

 

저는 서서히 다른 모습에 눈을 떠갔습니다. 다른 법우님들의 표정과 정진 모습, 모두들 너무나 평안한 표정과 진지한 정진의 모습들, 저 혼자만이 불편함을 불평하며 지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반야심경과 나무아미타불을 불렀습니다.

찌는 듯한 법당, 열기…

그러나 서서히 그 더위가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제게는 지금까지 경험치 못했던 새로움이었습니다. 또한 감동이었습니다.

“불교는 무아(無我)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我)라는 것은 본래 없다.”

“내 생명 네 생명 따로 없이 우리는 모두 하나의 생명이다.”

제가 법회에 참석하면서 항상 가지던 의문점은 ‘다른 법우님들은 어떻게 그것을 실행하면서 살아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중생으로 태어나 이 현상세계에 살면서 나(我)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내 존재를 없앨 수 있는 것일까?

논리적으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그것은 역시 순간일 뿐, 돌아서면 다시 중생의 나로 돌아와 나를 내세우며, 조그마한 것에도 화를 내고 내 감정대로 나(我)만을 위해 모든 것을 판단하며, 내 의지에 따라 살아가려 하는 나(我)를 발견하곤 합니다.

 

아마도 문사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민 없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런지도 모릅니다.

‘물질적인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살면 내 생명에 대한 모욕밖에 남는 것이 없다’는 법문을 들으면서도, 어차피 우리는 중생의 생명으로 태어났으니 물질적인 것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그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나무아미타불’만 외치면 정말 참생명을 살 수 있는 것일까?

 

정말 많은 혼란이 왔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부처님 뜻에 맞게 사는 것인지…

그러나 제 가슴에 와 닿는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생명의 근거지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 극락세계-부처님생명의 세계-에 두고 산다면 참생명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너무나도 단순한 한마디였으며, 언젠가 법회에서도 들었던 법문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제서야 그 법문이 저를 깨워주고 있었습니다.

 

아! 이래서 수련법회의 참석이 필요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수련법회를 통하여 정말 너무나도 소중한 것을 얻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중생으로 착각하고 살지도 모르지만, 다른 생명을 내 생명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마음의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긴 시간이 아닌 짧은 시간일지라도 짧은 시간이 모이다보면 언젠가는 중생생명으로서의 나는 사라지고 오직 부처님생명으로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수련법회에 다녀온 우리 조카녀석, 집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반야심경을 열심히 읽으면서 할아버지를 괴롭힙니다. 무슨 뜻이냐고…

힘든 수련법회였지만 내년에도 같이 가겠답니다.

저 역시 아직도 너무나 부족한 점이 많고 법회 참석도 제대로 못하지만, 열심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렵니다. 참생명을 사는 그날까지…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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