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과 들음
 

무조건 믿으라고 하면서 믿음을 너무나 강요하는 기독교에 반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불교를 접하고 법문을 듣다보니 불교 역시도 믿음 없이는 신앙생활이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에서의 믿음, 진정한 믿음이란 어떤 것인지요?

문사수 2009.12.21 조회 수 5611 추천 수 0
불교를 흔히 깨달음의 종교라고 합니다. 깨닫다와 믿는다는 얼핏 상충되는 듯 오해되고 있어서, 믿음은 불교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또한 질문하신 불자님의 경우처럼 기독교에서는 무조건적으로 믿음을 강조하다보니 거부감이 생겨서 믿음보다는 깨달음을 불교신앙의 목표로 삼고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이야말로, 도의 근원이요 모든 공덕의 어머니”라고 화엄경에서 말씀하고 계시듯이 믿음이 불교신앙의 시작임과 동시에 결론입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깨닫기 전부터 있던 '그것'에 대한 알아차림입니다. 그렇다면 깨닫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삼칠일간 선정에 들어서 그 깨침의 내용을 복기하며 모순은 없는 지를 살피셨다고 경전에서 말씀하십니다. 그 깨침의 법은 우주 전체에 걸림없고 완벽하지만 극히 오묘하고 깊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법을 믿지 않고 비방하는 악업을 지을까 염려하여 설법을 그만두기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때 범천[梵天 : 하늘세계를 관장하는 신 중의 왕]이 간곡하게 세상에 그 깨침을 전하셔서 모든 생명들을 구원해 줄 것을 거듭 세 번이나 요청합니다.
마침내 범천의 권청을 수락하고 스스로 '나는 깨달은 이, 붓다'임을 선언하십니다.
범천의 삼청(三請)을 단순한 사건으로 볼 것이 아닙니다. 불교신앙의 시원이라고 할 만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불법은 세상에 공표되고 지금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져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범천은 소위 우리들 관념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우리네 인생은 관념 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생각이 일정하고 반복적인 규칙으로 인해 모양새를 갖추면 관념이 됩니다. 하늘세계와 지옥세계, 행복과 불행, 선과 악 등의 관념이 그것입니다. 또한 이 관념에서 이념과 개념이 생기게 됩니다. 어쨌든 하늘의 신은 바로 우리들의 관념을 표상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지배받고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범천이 자신과 세상의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깨치신 이 부처님께 머리 조아려서 설법을 권청한다는 것은 관념의 항복을 상징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관념의 극복이 없이는 불법도 자칫 관념의 틀에 갇혀서 오롯한 믿음을 낼 수 없음을 아시고 짐짓 설법을 그만두는 모습을 보이신 것입니다.
범천의 권청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중생들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받아들여야 할 부처님의 깨침은 아주 분명하고 단순합니다.
경전에 부처님께서 깨치신 직후 독백적으로 하신 말씀이 설해져 있습니다.

“아! 기특하구나, 저 모든 중생이 다 이와 같은 여래(如來)의 지혜와 덕상을 완벽히 갖추고 있건만, 다만 번뇌 망상에 사로잡히어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구나."

본래 우리의 참생명은 더하고 빼고 할 것 없이 이미 완벽한 것입니다. 이 사실, 즉 생명의 실상을 깨치신 것이죠. 그러나 우리 중생은 번뇌 망상에 사로잡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깨칠 때까지 내버려 두고 지켜보시는 분이 부처님일까요? 부처님처럼 수행하고 고행해서 그 깨침의 경지에 스스로 도달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떻게든 중생으로 하여금 그 생명의 실상을 바로 알도록 설법하십니다. 설법으로 중생을 교화하시는 것이 부처님의 자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깨치신 법에 대한 설법을 듣고서 믿음을 일으키고 받들어 행함으로써 부처님의 깨달음과 하나가 됩니다.
화엄경에서도 첫 믿음을 일으킴이 곧 깨달음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듯이 불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불자들은 늘 삼귀의를 암송하며 그 믿음을 북돋우는 것입니다. 법[法:진리]에 대한 믿음과 부처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승가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그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님으로 안보일지라도 부처님임을 믿고 또 부딪히는 일마다 하찮을지라도 성스러운 불사임을 믿고 생활하는 자, 그가 부처님의 뜻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일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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