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바니 세바네
 

수련회는 선택?

권 숙 2009.09.16 조회 수 3837 추천 수 0

찌는 듯한 무더위에 여러 법우님들을 만나 기쁨과 감사 속에서 함께 수련법회를 마친 지 벌써 보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이제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도 약간의 바람결이 느껴지고, 아침 저녁으로는 가을을 느끼게 하는 서늘한 기운도 조금씩 감돌고 있습니다. 더위가 혹독했던 만큼 조금씩 느껴지는 가을에 더욱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더위에 유난히 약한 저는 올해 수련회 참석을 놓고 많은 갈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늘 지쳐서 제대로 지내지 못하는데다가, 올해는 막 이사까지 한 뒤라서 피로가 겹쳐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을 것 같은 핑계가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두 함께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다보니, 그냥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더욱 더 결정내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조금은 의무감으로 마지못한 마음으로 가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수련회를 마치고 난 지금의 결론은 언제나 그랬듯이 더할 나위 없이 잘했다는 마음뿐이랍니다.

 

수련회에 참석해서 기쁘고 감사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올해의 수련법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의미있고 보람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큰 기쁨을 얻게 된 데는 지금까지 만났던 법우님들, 특히 어린이, 청소년 법우님들을 새롭게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소규모의 조별 활동 시간이 많아서 처음 참석하신 법우님과도 바로 친해질 수 있었고, 또 이제까지 만났던 법우님들을 다시 새롭게 만나는 정말 소중한 체험과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어린 법우님들은 이제까지 만났던 적조차 없다가 새로 만난 사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만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자기들끼리 모여 있을 때는 철도 없고, 예의도 없고, 엉망으로 행동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들의 예쁜 모습, 진지한 내면을 보지 못했나봅니다. 그런데 막상 함께 활동하고, 공양 준비하고, 주제토론을 하면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아니라 바르게 보지 못하고 있던 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어리다고만 여겼는데 아주 진지한 자세로 절을 하고, 공양준비를 맡게 되었을 때 자기가 무슨 일을 하면 될지 먼저 찾아와서 묻던 재용이. 까불고 산만하기만 한 줄로 생각했는데 무슨 일이든지 알아서 먼저 하고, 안마를 해주며 지쳐버린 어른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주던 혜원이. 겉으로는 못하는 척, 하기 싫은 척 하면서도 공양준비, 주제토론에 열심히 함께 해준, 더욱 더 예뻐진 영원이. 잠깐 함께 있다가 갑자기 떠나서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해 아쉬웠던 태윤이… 모두가 소중한 인연들입니다.

 

수련법회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던 것은 장님과 벙어리가 되어 길을 안내해서 함께 경행(經行)했던 것입니다. 처음으로 수련법회에 참석하신 박연옥 법우님과 함께 짝을 이루었는데, 참 많은 느낌과 깨달음을 얻게 해준 활동이었습니다. 눈을 가리고 길지 않은 길을 걷는 동안 따뜻하게 배려하고 감싸주는 박법우님 덕분에 처음에는 한 걸음을 내디디는데도 불안하고 망설여졌는데, 곧 매우 편안한 마음으로 씩씩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이런 마음으로 부처님 지혜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보다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늘 지켜주고 계신데 내가 어두워 알아듣지 못하고 의심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혜가 부족해서 눈 먼 사람처럼 주저하고 망설이며 인생길을 장님처럼 더듬거릴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지혜에 온통 내 자신을 맡기고 당당하게 살아야겠다는 기쁜 깨달음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염불공양 극락장엄’이라는 주제토론도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같은 조가 되어 함께 자신의 정진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주신 혜심, 법인, 명광, 보명 법우님 등을 통해서, 또한 다소 지루할 수 있었던 내용인데도 열심히 듣고 동참해준 영원 법우님을 통해서 평소 제가 가지고 있던 문제를 다시 돌아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정리해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주신 법문과 주제토론을 통해서 부처님의 원력을 믿고 염불해서 성불한다는 확신에 찬 결론을 다 함께 내리면서 일상과 수련이 다르지 않음을 증명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새로이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하는 정진이라는 헛된 생각을 말끔히 씻고 부처님께서 불러 주시기에 그 부름에 믿고 답할 뿐이라는 생각을 하니, 예전에는 힘들다고 여겨지던 정진이 참으로 감사하고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지를 늘 헤아리고 계산해보려고 마음먹었다니 참 우습지요. 염불(念佛)이 제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 할 때 열심히 들어주고 깨우쳐주시던 정해 법사님의 말씀이 수련회 도중에 비로소 또렷하게 마음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일전에 우리 문사수법회(聞思修法會)의 홈페이지에 수련회는 선택이라는 글이 올랐었습니다. 혹시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득이 참석하실 수 없는 분들이 마음 불편해하실까 하는 생각에서 깊이 배려한 글이라는 느낌이 드는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믿음이 잘 흔들리고, 제 힘으로 산다고 착각하고, 제 잘난 생각에 자꾸 휩싸이고, 염불하는 마음을 잘 잊는 분이 계시다면 그런 분들에게 수련회는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바르게 잘 믿고 계신 분들에게도 수련회는 필수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을 정성껏 가르쳐 주시고 바른 믿음으로 이끌어주시는 법사님이 계시고, 우리들의 정성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법당이 있고, 또 같은 가르침 속에서 함께 정진하는 법우님들을 만나 극락을 체험하는 시간을 함께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곳에서 혹시 아직도 힘들어하고 계시는 법우님께 당신의 바른 믿음과 정진(精進)을 드러내는 공덕을 짓는 기회를 함께 나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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