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어떻게 설명하세요?

보해 2008.09.03 조회 수 17347 추천 수 0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라는 표현은
학교 다닐때도 배운
일반 사람들도 익숙한 문장이며,
불교의 대표적인 글귀라 생각듭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법우님들이 생각하시는 "뜻, 의미"를 설명하셔도 좋고,
나는 이 부분을
"이러한 비유"를 들면서
설명해 보겠다
라고 비유를 들어 주셔도 좋습니다.

읽어 보신 법우님들 각자 한마디씩 해 주세요.
강제를 좀 할까요?
간사님들은 꼭 쓰기^^

조회수 3회까지는 제가 글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증가한 숫자임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보해 올림

11개의 댓글

Profile
만수
2009.09.19
훌륭하신 대표법우님의 글에 감히 답글 올립니다.

색즉시공 즉 "물체와 그림자"라 볼 수 있습니다.
빛이 있으면 물체와 그림자는 나눠서 이야기 될 수 있지만
빛이 없으면 암흑이면 물체도 그림자도 나눌수 없습니다.

색과 공이 같다는 것은 빛이 없다면 동일한 것입니다.
결국은 빛이라는 매개체에 의해 물체와 그림자가 나누어지듯
색과 공이 다른 글자로 표현 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색과 공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왜 같은 말을 반복했을까요
색즉시공 하나면 다 알아들었을텐데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색=공
현대수학이나 어떤 공식에도 한번 쓰면 다시 반복하지
않지만 사람살이에는 한번 더 강조하여
중요성을 인지시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이 우주는 빛이 있기에 존재하는 유한세계입니다.
만약 빛이 없다면 이 우주나 암흑이나 뭐나 할 것 없이
한 덩어리의 어떤 물체가 되겠죠
그것이 태초에 하늘과 땅이 나뉘는 것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요
음양도 빛이 없는 곳에서는 음도 양도 구분되지 않을 것이
지만 빛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항상 음양이 존재하므로
그 이상의 법
색즉시공을 항상 잊지 말아야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Profile
보천
2009.09.20
제 삶에서의 색즉시공 (2008.09.06)

보해, 만수 법우님 반갑고 감사합니다.ㅎ

암기해서 말씀 드리는 것은 어떨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암기 + 생활에서 암암리에 적용되는 바라고 생각되는 것을 표현해 보겠습니다.

우선 스님께로부터는 공 = 부처님 생명, 색 = 중생으로 들었고
법사님으로부터는 공 = 경계없음 또는 보편성, 색 = 차별성(개별성)으로 들었으며
이러한 풀이를 제 삶에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까 "색", 개별 생명체로 보이는 나의 생명 영역을 보면
한계를 그을 수 없어서 "공"
이것은 그냥 비어있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무엇도 채울 수 있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샛별 = 나 ^^

저는
속명=색, 법명=불이=공 의 구도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육신을 중심으로 나고 죽음과 경계가 그어지는 것으로 보일 때 부르는 말,
개별 생명체로 하나 둘 나누어지는 것으로 취급할 수 있는 것,
태초와 종말, 시간을 선분으로 이야기하면 "색" 의 관점인데

나고 죽음이 없고
경계가 없으며
시간을 무시무종,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원으로 표현하면 "공"의 관점입니다.

여기서 관점이라고 이야기 이유는
제 속명인 조은영 그대로가 부처님 생명이고
이를 이르는 법명 보천이기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보천은 영원불멸, 무량광 무량수에 대해 이르는 호칭.^^

제가 지금 가정과 직장과 친구들과 이웃들과 법우님들과 이루어가는
생각과 행동에는 부처님도 살아 계시고 예수님도 살아 계시고 법사님도 살아계십니다.
(다중 인격이라는 말이 아니라 영향권에 있다는 것이져.^^)
부모님과 부모님의 부모님, 그 부모님의 부모님, ...
스승님, 스승님의 스승님, 그 스승님의 스승님, ...
친구, 친구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 ...

여기가 제 생각과 행동에 미치는 범주(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음)이고 그래서 "공"입니다.

저의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만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서 제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계십니다.

물, 공기를 포함해서
이렇게 영향을 주는 존재는 온 지구 상에 꽉 차있고 우주가 저의 삶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둘이 아닙니다.

지금은 명절에 만날 수 있는 양가 부모님(색), 남편(색), 자녀(색), 친구(색), 법우(색) ...
하지만 언젠가 긴 이별을 하게 된다고 해도
부모님은 사라진 바가 었는 것이고
제 삶에서 계속 표현되고 작용할 것입니다. - 공!

또 다시 이야기해서
사람이라는 색,
여자라는 색,
불교도라는 색으로써 표현되는 저는
조은영이라는 유한 색이 다하면
주변 색의 안이비설신의에서 사라지겠지만
제가 미치는 생각과 흔적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범위가 무한입니다.

그래서 바둑을 두다가 아들이 물에 떠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아주 잠시만 미동도 없다가 이내 바둑을 두는 지혜가 발휘되는 것이지요.

경계 없음으로 인해 저는 부모님이나 직장 동료 등 상대를 훨씬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매순간을 잘~ 살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그의 모습은 수많은 인연이 개입되어 나타나는 것이고
옳고 그름의 견해가 아닌 그 보이지는 않지만 인연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화가 난다거나 이익 또는 손해를 본다거나 희생을 한다는 견해가 따로 들지 않습니다.
또는 그런 win-win 생각 속에서 과감한 행동이 나옵니다.
색즉시공 원리에서 출발하기에 온전한 "정직"이 될 수 있겠구요.

나비효과는 "공"의 속성입니다.

그런데 "색" 과 "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즉"입니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따로따로의 개념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일관되게 설명하고파 다소 반복이 되고 언어 표현의 부족함이 느껴지지만 제 인연으로써 요약은 다시 처음과 같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나=부처님생명, 부처님생명=나
조은영=보천(영향권 몽땅), 보천=조은영

보산 법우님의 9월호 법우지 원고, "상"에 대한 말씀도 좋은 참조라고 여겨집니다.
과거 또는 미래의 모든 논의에 감사합니다.

_!_ 오늘도 평안하세요...
나무아미타불
Profile
보해
2009.09.20
말장난이다 라고 생각하는 기독교 친구들에게 (2008.09.05)


기독교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투로 적어 봅니다.

기독교는 천당이 여기말고 어디 멀리 있니?
불교는 극락이 멀리 있다고 하지 않고,
현재 생활하고 있는 이곳이 극락이라고 해 !
그래서 현재의 삶에 항상 행복해 하고,
앞으로의 살아있거나 죽은 후에도
어디에 있든 행복할 것이라고 믿어......
이게 불교야.

지금 걱정되고 고민스러운 것이 한두개 아닌데,
이곳이 극락이라고.....
라고 생각되지?
근데 불교는 그렇다고 해.

이런 설명이 불교 경전 온천지에 깔려있어
그중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있어.
그대로 해석하면,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래
두개가 동시동작으로 똑같다라는 뜻이야

색은 색이고, 공은 공이지
뭐 개풀 뜯어 먹는 소리지. 헷갈리게.
그런 생각 들지.

예를 들어 볼께.
똑같이 무지하게 가난한 집에 생활하는 2 가족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구
상황이 똑같다는 가정이야.
근데 한가족은 이놈의 찌들린 환경을 탓하며, 맨날 싸움질이야.
또 한 가족은 찌들린 환경에서 오순도순 살아.
이러한 가정은 말 되지.

똑 같은 상황에지만,
첫번째 가족은 분명히 짜증나는 환경이 있는거야. 지가 느끼고 있거든. 짜증나는 환경은 없어 라고 그 가족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자기 눈앞에 짜증나는 데...무슨 소리냐 할꺼야
이 가족의 생활하는 모습을 "색"이라고 그래

두번째 가족은 어떤 생각을 가진 가족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이런 찌들린 살림에도 고맙다는 생각으로 오순도순 사는거야.
이러한 가족의 모습을 "공"이라 그래

결국 "색" "공" 하지만.....똑같은 상황놓고,
어떻게 받아드리냐 문제야.
그래서 "색","공"은 같은거야

좀 더 자세히 불교 공부 해 볼래.

안녕
Profile
보천
2009.09.20
@보해
[답글] 말장난이다 라고 생각하는 기독교 친구들에게 (2008.09.05)



저도 타종교와의 경우로써 설명을 하려고 했었는데요.
제 구도는 이런 거였습니다.

두 가족의 삶의 모습이 다은 것이 "색"
그러나 두 가족의 구성원 간, 두 가족 간 서로 영향을 미치며 삶고 있다는 사실이 "공"

요즘 종교성이 사회에서 좀 더 두각이 되고 있는데요.

불교도 -> 기독교: 당신의 행복이 내 행복입니다. 있는 그 자리에서 지금 행복하시면 됩니다.

불교도라는 색,
기독교라는 색,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 살려주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이치가 공

기독교도 -> 불교도: 당신이 행복하다고 하고 아무리 선행을 해도 조건에 만족하지 않으면 헛된 삶이며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으므로 궁극적으로는 불행이라고 할 때의 기독교도 색, 불교도 색

지금 이 세상에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지옥이라는 관점에서는 색의 세계만 인정하여 색의 세계만 보임.
100% 기독교도가 아니면 천국은 없으므로 기독교의 천국도 상대유한으로 보여지는 색의 세계
기독교도가 불교도를 어찌 보던지 서로 살려주고 살고 있는 세상 이치가 공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네요.
Profile
보천
2009.09.20
직장에서 있었던 사례 하나입니다. (2008.09.06)




(다른 법우님들의 댓글을 더 기다려야 되는데
주말이라 시간 쓰기가 좋아서 걍 또 올립니다.^^)

몇년전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 나눕니다.
제가 홈피에서 나눈 적이 있던 것 같은데
예전 홈피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직장 동료가 2,000명 규모이고 IT업계이다보니
자존심이나 개인 의식이 강한 편입니다.
그리고 공무원은 아니면서
국가 예산으로 진행하는 과제가 많다보니
필요할 때는 공무원으로 취급합니다.^^
한번은 어떤 지침이 행해졌는데
직원 하나가 이를 위배하면서
청원 경찰 분과 실갱이가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는 직원이 사내 게시판에 쳥경분을 멸시하는 용어를 사용하며 글을 올렸습니다.
물론 표현의 문제에 대한 동료들의 댓글이 있었지요.
그래도 당사자는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편 청경분은 무척 마음 아파하였지요.
청경분들은 체격도 좋고 인상도 좋은 분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해병대 출신의 주위 청경 한 분은
"내가 그 사람 죽이겠다."고 하고는 직장을 옮길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일이 벌어졌던 사안인데
아무래도 그냥있으면 상처가 크고 다수에게 영향이 커서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때 제가 스님께 들은 법문을 인용하여 게시하였습니다.
청경분들이 유니폼을 입고 정문 출입을 지킬 때에는 조직의 안전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뿐이므로
사람의 인격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덧 붙여서 어쩌다 청경분들이 업무를 마치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퇴근할 때 보면
너무나 체격도 좋고 인상이 좋으셔서 보기 좋았다고 찬탄도 해드렸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느꼈었거든요.

이러 저의 댓글이 있은 뒤 한참 후에
직장 동료가 마침내 사과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전혀 모르는 동료이지만 사과하는 용기에 또 찬탄 글을 올렸습니다.

청경분들은 주어진 업무를 하실 때 유니폼을 입기에 특히 색이 드러나 보입니다.
직장 동료나 저는 개별 생명체로써 "색"입니다.

그러나 저의 이러한 생각과 행동은
법사님과 스님과 부처님으로부터 이어진 것입니다.
직장 동료간에 서로 그렇게 영향을 주었고
이것은 이후의 삶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공!

이렇게해서 갈등이 해소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부처님, 법사님, 법우님, 모든 선지식께 감사드립니다.

보천 합장 나무아미타불
Profile
동남서북
2009.09.20
같은거라고 들었으니까, 같은것 아닌가.... (2008.09.07)



욕심.. 나에게 직접 관련한 이익과 손해...이런마음이 생하면
색이고, 아니면 공이고..
그러니깐 색과 공이 같은것 아닌가???
어렵다!! 쉬운말로 바꿉시다!!
알려주세요....
Profile
만수
2009.09.20
어느 스님께서 나눠주신 쪽지속에서 (2008.09.10)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라는 표현은

==========================================================
이 뜻은 몸(물질)이 마음(정신)과 다르지않고, 마음(정신)이 몸(물질)과 다르지 않으므로 몸(물질)이 곧 마음(정신)이며, 마음(정신)이 곧 몸(물질)이므로 보고듣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의식도 또한 그와 같다.

즉 본인이 살아온 대로 본인의 국토와 본인의 몸모양을 받게된다.

다시말하면 지금 본인 국토와 본인 몸모양을 받고 살고 있는 것은 전생에 본인 마음으로 살아온 것이며, 지금 살아가는 것은 다음 세상에 본인이 될 본인의 국토와 본인 몸모양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삶의 행위가 천사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면 다음 세상에 천사의 마음으로 천국에 태어날 것이고, 보살의 마음으로 산다면 성불의 길을 갈 것이다.
결국 삶의 행위가 존재하여 본인 마음안에 그대로 쌓여진 것이 미래의 운명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천상, 아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중 자기에게 해당되는 곳에 본인에게 맞는 다음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본인 마음으로 이 우주에서 영원히 살기 때문에 본인이 지은 선, 악의 업으로 분명히 다음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수상행식)
===========================================================
- 이 말씀대로 다음 세상에 아수라, 축생 등이 아닌 인간보다 나은 다음 세상을 맞이하려면 마음을 많이 닦아야겠지요
Profile
조은영
2009.09.20
정해법사님의 타종교인과의 대화 글 하나를 나눕니다. (2008.01.09)



(성경책 보시면서 진지하게 대화하고 함께 공부하고자했으나 상대쪽에서는 듣기만 좋아하고 스스로 공부할 생각이 별로 없음을 아시고 마치 만다라처럼 게시했던 글을 모두 지우신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일부 가지고 있던 글 중에서 하나를 법우님과 나눕니다.^^)


하나님을 설명한 복음 내용

2007/04/16

개신교 복음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짐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마가복음
선생님이시여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하심이 참이나이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2. 누가복음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있다 저기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3. 요한복음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하나님은 한분이고, 다른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 나라는
각자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 숫자 만큼 있는 것이라면
각각의 하나님 나라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이 되어서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시게 됩니다.

1,2 두 복음의 내용이 불일치하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야하면서, 각자의 하나님 나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여있어야만 합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특성을 그물코의 구슬에 비유합니다.
그물이 있는데 그물선이 교차되는
각 그물코마다 구슬이 있습니다.
이 구슬을 우선 따로 구분되어있는 것 처럼 보이는
생명체나 무생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그물의 크기는 무한대의 크기니
그물코의 숫자도 무한대입니다.
그런데 각 그물코의 구슬의 모습은
나머지 구슬이 모두 비추어져 있는 모습니다.
생명체나 무생물 뿐만이 아니라
한 생각도 그물코의 구슬입니다.
이것은 부처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물이나 그물코의 구슬로 설명하는 것이니
실제로는 그물이나 그물코의 구슬이라는 곳 조차
설정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불교의 부처님 세계에 대한 설명도구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것도 이런 특성이면,
복음의 1,2 가 설명됩니다.

그물코의 한 구슬은 나머지 구슬의 모양이
비추어져서 자기의 빛나는 모습이 만들어집니다.
구슬 하나 하나의 모습이 서로 따로있음이 하나도 없는
이것이면,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이가 따로 없으면서
각자의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1,2 가 어긋나지 않는 말이됩니다.

그런데
각자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특성이 동일합니다.

그러니
요한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과 마찬가지인 '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

여기서보면,
아버지와 나는 따로 있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굳이 표현하면
하나님(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하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면, 어찌보면 내용상으로
맞지않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내가 동시에
하나이기에 하나님이다.
이러면 좀 말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란 말만 빼면, 하나님이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과 가깝다고 했었습니다.

불교에서는 '하나'라는
말도 위험성이 있어서 사용을 자제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누가 먼저가 아니기에

"나는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

'동시'
이렇게 말해지는 것입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부처님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나는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가 될려면
내 안과 아버지 안의 크기가 같아야만 합니다.
아버지가 나보다 더 크지 않아야합니다.

그 다음에
안이라고 하지만, 어떤 그릇이 있는데
그릇의 안이라는 것과는 다릅니다.
테두리가 없어야합니다.

내 몸도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 몸도 내안에 있을려면
어떤 테두리가 있으면, 부딪혀버려서
서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 몸이 그릇같아서
우리 몸안에 몸과 따로
어떤 영적인 것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닌 셈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버지의 안에 있으니
바깥을 보면, 아버지가 있어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무리 보아도 따로 따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 혹은 하나님은
'내 안'에서만 정확하게
'나'와 조금의 틈도없이
일치함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이 내용이 쉽지는 않지만,
위의 저 세가지 복음의 내용을
곰곰히 생각하고, 따져보시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기도할 때에 바깥
즉 사탄을 부르는 기도를
하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

그물코로 설명되는 공!
주객이 따로 없고 동시성으로 설명되는 이치...
감사합니다.

* 혹시 다음 목록 중에서 내용이 궁금하신 법우님께서는 eycho @ etri.re.kr로 메일 주시면 한편씩 전해 드리겠습니다. 회신 드리면서 저도 공부하고 싶어서요...^^


0413유쾌함을 주시는 예수님
0416하나님을 설명한 복음 내용
0419개종
0419불교의 내세관과 윤회

0419불교의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구원
0420가난한 자의 복과 부자의 화
0421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윤회
0421죽은 후에 하나님

0501내 근본 문제 해결이 종교
0502괴로움없는 ‘삶'을 원하니 (아미타경1)
0504극락이 있으나 (아미타경2)
0510즐거움만 있는 곳 (아미타경3)

0518기독교와 불교와 종교 대화를 하려고 한다면
0518눈 부비기를 그침
0518불교의 정토신앙과 어떤 카톨릭 신앙
0518사람 안에 하느님이 있습니까

0518왜 이름이 중요한가
0520믿음과 의심
0524보배만가득한나라(아미타경4)
0524성불과 섬기는 예수님
0524태초의말씀

0605이타행을 배우는 것이 종교입니다
0606악마가 되지 못하는 지옥가는 어머니 - 성모
0610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

0613이루는 기도, 죽는 기도
0614생명의저울
0615들음으로 믿음이 서며, 사랑을 하게 됨.
0617'무식함'으로 인생의 배수진을 친다.

인연입니다.
나무아미타불
Profile
보안
2009.09.20
[답글]은 아니구 댓글 (2009.01.09)




제가 계시한거에 보천법우님이 댓글달면서 보산법우님글을 살펴보라 하심에 들어가보구 거다가 다시 댓글달구 좋은 인연은 쉬 퍼지나봅니다.

모다 깊이 공감하며 걍 생각에...
겉(것)과 빔으로 색공을 말하심에 감성적 동의가 일면서
이둘이 전선처럼 꼬여 상대세계가 불 나부러에대해
...댓거리...
걍 상대세계를 밝힌다가 어떨까
겉과 빔이 다르지 않아 겉이 빔을 명확하게 하고
빔이 겉을 명징하게 한다면
겉과 빔이 꼬여부러 합선일키구 불내구 하는거 보담
나사선 마냥 서로 치켜 올리듯
진리의 세계를 연다 길케
물론 상대의 세계를 열기두 하겠지만

다르지 않다!
여기 나 나 이 나 나 다르지 않다
글구 전제의 소멸이 화한다면 승화 한다면 표현이
갠적인 취향으로 더 좋아하는데
결굴 갠적인 취향이 되었네 -@@- 삭제욕구 발동..
꼬여분거는 정반합(변증법 또는 나사선)으로 표현하구
불내는거는 승화로 표현함이 좀 더 "낭만"적일거 같아요ㅎㅎ
Profile
보산
2009.09.20
[답글] ( 2008.12.16 )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지혜를 키워주는 법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 합니다.

이 여덟자는 우리의 언어체계, 상대세계를 찢어버리는 한 문장이다 라고...

색을 '것' 공을 '빔' 이라고 번역한 반야심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것은 빔과 다르지 않고, 빔은 것과 다르지 않으니 것이 곧 빔이며 빔이 곧 것이다."

이렇게 순 우리글로 옮긴 것이지요.

것은 빔이 아닙니다. 빔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언어체계상 정의는 그렇습니다. 것의 정확한 정의는 '빔이 아닌 것' 입니다. 빔의 정확한 정의는 '것이 아닌 것' 입니다.

그런데 반야심경에서는 이 둘을 부딪치게 해 놓고 있습니다. 마치 전선 두 가닥을 합쳐서 합선을 일으켜 상대세계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려는 것 같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진정한 뜻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사과는 능금과 다르지 않고 능금은 사과와 다르지 않다. 사과가 곧 능금이고 능금이 곧 사과 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과는 사과 아닌 것과 다르지 않다. 사과는 곧 사과아닌 모든 것이다.

우리가 반야심경을 만나기 전까지 쓰던 언어체계가 맞다면 반야심경은 오류의 문장입니다.

만일 반야심경의 이 한 문장이 맞다면 우리의 언어체계 즉 상대세계는 곧바로 무너져야만 합니다.

보산 합장
Profile
시행
2020.04.23

나무아미타불~~~~~~~~~

우연히 본 오랜만에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