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바니 세바네
 

문사수법회와의 만남 - 신앙발표(2)

보천 조은영 2009.09.09 조회 수 3576 추천 수 0
법문을 계속 들으면서 그럼 이제 할 일은 무엇인가? 궁극에는 어떤 삶인가?하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정직·언행일치·천하무적·(이타)행'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도덕에서 요구되는 정직이 지금은 왜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머리로야 쉽게 끄덕이지만 몸의 요구를 항상 먼저 들어주고, 생각의 습을 바꾸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나'가 항상 있기에 슬그머니 거짓된 자아의 자리로 돌아가곤 합니다. 그래서 정진(精進)과 전법(傳法)이 이루어져야 함을 인정했습니다. 계속 그 자리에 있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상태임을 알았습니다.

은혜를 받았는데 그저 고맙다는 생각만으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생명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주위에서 괴로워하는 가족이나 이웃에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도 밝아지고 상대도 밝아지자. 그것이 제가 전법하는 이유입니다. 나 먼저 좀더 완벽해지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그것은 결국 될 수가 없다고 배웠고 저 스스로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선언했습니다. 지금 믿음대로 선지식을 따라 하다가 납득이 가면 또 더욱 확신을 가지고 살게 될 테니까요. 강박 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기에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선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기회가 올 때 하고자 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만나는 사람들과 제가 바뀌게 된 부처님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진실은 통하더라구요. 오늘도 제가 종교인임을 자처하는데 그것이 투쟁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늘 평화의 도구로 쓰이기를 빕니다. 나무아미타불!

여여 법사님께서 법우화 운동은 부처님 모시기 운동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매일 매일 만나는 생명을 부처님생명으로 보는 삶, 극락 정토의 삶 말입니다.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를 법전, 법여 법우님으로 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저 자신도 못마땅한 성격을 인정하지만 부모님 하면 떠오르는 한계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편애, 부정적 사고, 부담스러운 무조건적 사랑, 등등. 어떤 것을 들어도 해결되지 않던 것들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부처님생명으로 대하면서 찬탄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형제도 부처님으로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껏 아버지로 알았던 그 아버지가 아닌 법전 법우님으로 대하니, 부처님께서 우리를 부처님으로 불러주시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이라는 지혜의 말씀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부모님께서는 임종의 자리에서 염불하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놓입니다. 공포로써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 옷 갈아 입으시듯이 편안히 가실 거라 생각하니, 지금도 끝없이 받고 있는 은혜에 효도하게 되는구나! 하고 믿고 있답니다. 나무아미타불!

직장 생활을 한참하면서 무척 괴로운 적이 있었습니다. 상사와 동료를 너무나 미워했습니다. 상사가 상사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서 아래 사람에게 넉넉하게 베풀지 못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잘난 마음과 저만 정의의 편에 서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었기에 매일 지옥이었습니다. 이런 삐뚤어진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법회를 만나고 법사님께 부처님 말씀을 꾸준히 다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를 바꾼 것뿐입니다. 지금도 나를 바꾸는 것만 계속 하는 것입니다. 저를 보면 괴로움, 원망, 미움, 교만, 질투, 게으름, 선입관, 편견, 인색함, 변덕, 공포, … 이런 것들이 가득합니다. 이런 제가 저를 바꾸려든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에 의지합니다. 항복할 때 되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보려고 할 때는 되지도 않을 뿐더러 결국 상처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앞에서도 우선순위를 말씀드렸지만 지금 가장 중시하는 것이 법회와 법문입니다. 일체모든 생명의 행복을 빌고있으며 저의 모순된 생각과 삶을 수정하려고 할 뿐, 남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제가 먼저 미소 짓는 사람, 휴지 줍는 사람, 화합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 부드러운 말하는 사람, 자원 봉사자, … 결국 세상에 회향하고자 하는 것이니까요. 이것이 법회로 살려지는 저, 보천의 원(願)입니다. 법회에서 계속 열심히 듣고 연습하면 현장에서 밝게 웃을 수 있으니까요.

문사수 법회에서 나오면서 주중의 경전 공부로 시작한 것은 유마경입니다. 법사님 덕분에 놀라운 대승 경전을 만났습니다. 법우님들도 유마경에 인연이 닿으시기를 빌겠습니다.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바로 잡듯이 경전을 자신의 삶에 비추어보는 간경(看經)에 대해 말씀을 듣고 '아 그렇구나!' 했습니다.
과거에는 스스로를 비추어보는 일을 하지 않았기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니 수정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지식만 쌓였고 모르는 것은 계속 모르는 채 고통만 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고통이 있지만, 이것이 고통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해결책이 있음을 알기에 여유가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계기로 지금 먼저 해야할 것은 근본 생각의 수정에 있음을 또 느끼고 또 느끼는 것입니다. 심지어 문제가 반갑기도 하답니다. 저를 성장시켜주는 기회이니까요. 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요즘은 수요일에 무량수경을 배우고 있는데, 매일 나 자신을 부처님 말씀에 비추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숙제를 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스님과 법사님들께서 매주 설해주시는 법문은 참으로 제가 온전한 생명을 되찾도록 길러 주십니다. 한탑 스님의 자상하고 이해하기 쉬운 비유! 항상 내 자신을 항복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힘있는 법문을 듣고나면, 그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전까지 오셔서 법문해주시는데 뭐라 감사함을 표할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보현행원품대로 사시는 스님으로부터 한없는 겸손을 배웁니다. 찬탄을 배웁니다. 명성 법사님, 여여 법사님, 정신 법사님, 정해 법사님의 무지개 빛 법문은 제게 항상 자부심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처음 오셔서 법문은 모두 잘 들었다고 하면서도 법회로 이어지지 못하는 인연이 많습니다. 제 눈으로야 안타까운 생각으로 바라보지만 문사수 밖 문사수 법우가 한량없이 많으심을 또한 믿습니다. 법당은 연습하는 곳이라고 말씀을 듣고, 시간과 공간을 규정해 놓았던 제 생각을 수정하게 되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보시도 100원이든 1,000원이든 아깝지 않은 선부터 연습하는 것이라고 일러주셨을 때는 보시에 대해 아주 편안한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의무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치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임을 알려주시니, 초심자에게 이보다 시원한 법문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법회에서는 겸손은 교만의 다른 표현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저를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겸손을 가장한 교만은 고개를 숙였답니다. 법회에서 듣고 또 듣고 하다 보니까, 언제 어디서나 두루하신 참생명인 아미타부처님은 우리가 하나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이 이미 한 생명임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상황과 조건, 역할에 따라 바뀌는 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주인으로 살라고 일러주십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사실은 전세 사는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그렇다고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꾸 소유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어서 집착하는 생각을 할 때는 괴롭습니다. 그럴 때는 얼른 나무아미타불 하라고 하십니다만, 사실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주술 같은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제는 항복이 지혜의 말씀임을 알겠습니다. 날마다 절대 무한을 드러내고 살겠습니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이제는 제가 먼저 밝아지는 것이 실제로 세상을 밝게 하는 지름길임을 믿고 따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은 부처님 생명뿐, 밥 부처님, 물 부처님, 공기 부처님, 아버지 부처님, 남편 부처님, 친구 부처님, 자동차 부처님, 부엌 부처님, 컴퓨터 부처님, 옷 부처님, 신발 부처님, 안경 부처님, 인류 형제 부처님, …
겉 모습에 속아 지금 내 앞에 있는 부처님은 못 보고 미래의 목표 달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간다거나, 어찌할 수 없는 지난 일, 이미 벌어진 일에 매달려 안절부절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무한 능력을 드러내고 사는 삶이면 되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매일 문제를 만납니다. 그러나 경우마다 다른 처방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한생명이라는 사실로 모두 다 풀리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문사수 홈 페이지에서도 지나간 법우지를 만납니다. 그러나 결코 지나간 글이 아니라 오늘 내 삶에 살아있는 법문으로 받습니다. 무슨 문제이든지 불이법(不二法), 한생명! 이 한 가지로 풀리는 것이구나 인정합니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 합니다. 앞으로도 일체모든 생명이 들려주는 법문을 계속 듣겠습니다. 그리고 변하겠습니다. 여자가 아니라 대장부로, 청년으로 살겠습니다. 일체 모든 생명이 부처님생명 누리며 사시도록 심부름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
나무아미타불!

<끝>
**2001년 聞思修여름수련법회 신앙발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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