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바니 세바네
 

我와 我所에서 벗어나기

보산 정희석 2009.09.09 조회 수 3594 추천 수 0

『병이 있는 보살은 (이 몸이 생긴 것이) 法이라는 생각을 멸하여 없애기 위하여서는, 이렇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이 (몸을 이룬 것이)법이다 하는 생각도 이것이 또한 전도(顚倒)된 것이니, 전도되었다는 것은 곧 큰 근심이어서 내가 응당 이를 벗어나야 한다’고 해야합니다. 어떠한 것을 일러 ‘벗어난다’고 하느냐 하면 아(我)와 아소(我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유마경 문수사리 문질품-

거리의 은행잎들이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가을은 또 이렇게 우리 곁에 찾아 왔습니다. ‘예이츠’라는 시인은
“보릿단 낟가리 속 생쥐에게도 가을은 왔다”
고 노래했습니다만 법우님들은 무엇에서 이 가을을 느끼시는지요?

우리가 은행나무를 바라보면서 아! 은행나무로구나! 하면 벌써 그 순간 ‘은행나무’와 ‘나’는 분리되어 버린 것이라고 지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생물학적 지식 또는 은행나무라고 이름 붙이는 과정이 벌써 나와 은행나무를 두 개의 개체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분리 없는 ‘관(觀)’을 해야하고 그것은 곧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물을 제대로 보는 것이라는 것이 그분의 설명입니다.

‘나[我]’와 ‘나의 대상[我所]’의 문제. 이를 이해하는 것은 곧 아(我)와 아소(我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또 그렇다고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공부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서 발표하는 이유는 법우님들과 같이 생각해보고 또 많은 가르침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아! 은행나무로군! 할 때 그 순간 나의 전 존재가 은행잎의 노란색에 실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 은행나무로구나. 노란 잎이 참 아름답구나! 라고 느끼고 생각하고 즐거워하는 주체는 바로 ‘나’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은행나무에 관한 나의 기억, 지나간 경험이 반응을 일으킵니다.
즐거웠던 추억일 수도 있고 괴로웠던 기억-혹 은행나무 아래서 연인과 이별한 경험이 있다면 더욱-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경험의 축적물이 나도 모르게 일으킨 반응이 다름 아닌 ‘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반응의 나’를 불변의 실체로 끌어안고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년 가을 어느 날 늘 다니던 길을 가다가 갑자기 아름답게 빛나는 가로수 은행잎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타오르듯 맑은 노란빛이 마치 딴 세상에 온 느낌을 주었었습니다. 바로 그 전날도 지나간 길이었는데, 그날은 새벽에 온 비가 매연에 찌든 시커먼 먼지를 말끔히 씻어주어 은행잎의 노란색이 환하게 빛났던 것입니다.

지금 내가 은행잎을 볼 때 그 기억이 작은 부분이지만 분명히 ‘나’의 일부로서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란 수많은 인연(因緣)들에 의해 형성된 ‘나’입니다. ‘나’아닌 내 주위의 모든 것 즉 나의 대상들[我所]은 ‘나‘를 형성하는데 관여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나’는 그들을 결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적이 없습니다. 철저히 내 기분, 언제나 내 설정에 따라 선택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 은행나무 노란 잎! 할 때 그 은행잎은 ‘나’라는 선택적 그물을 통과하여 시시때때로 다른 은행잎이 되어 나에게 들어옵니다. 즐거울 때 들어오는 즐거운 은행잎. 슬플 때 들어오는 슬픈 은행잎. 언제나 똑같은 은행잎이지만 모두 다른 은행잎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대상인 은행잎도 결코 일관된 자성(自性)을 유지하고 있는 불변의 실체는 아닙니다.

이렇게 나는 없습니다. 나의 대상[我所]도 없습니다.

이제 은행잎을 바라보는 ‘나’는 ‘바라보여지는 은행잎’과 다른 별개의 개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곧 은행잎이었고 은행잎은 곧 나였습니다.
내가 자라난 배경, 가족, 교육환경, 친구들, 날씨, 음식 등등 이 땅에 태어난 이래 수 천 수 만가지 인연에 따라 좋은 일, 나쁜 일이 있었고 그에 따라 가쁨과 슬픔의 세월이 있었습니다만 지금 은행잎을 앞에 놓고 생각하니 모두가 꿈결입니다.

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디에도 ‘내가’가 없으니 모두가 다 ‘나’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은행잎을 바라봅니다.
은행잎이 내 앞에 있습니다. 은행잎을 바라보는 내가 있습니다. 아! 아름답다! 반응이 일어나지만 그 반응은 내가 아닙니다. 과거에 의해서 조건지어진 반응일 뿐입니다.
그래서 반응은 실체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깨달음도 내가 깨닫는 깨달음이 아닙니다.

아(我)도 없고 아소(我所)도 없습니다.

가없는 화려한 다이아몬드의 강물은 유유히 흘러갑니다.

은행잎이 은행잎 아님을 보면 여래를 보리라.... 금강경의 게송은 바로 이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무아미타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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