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법보신문] “장애요? 좀 다른 모습의 친구와 놀다 왔죠”

문사수 2009.09.28 조회 수 3977 추천 수 0

자폐아와 아름다운 산행 1년
불자 남매 김 동 호-연 정

 

<사진설명>김동호 군이 경증 장애인 친구를 도와 하산하고 있다.(좌) 김연정 양이 산을 오르다 장애인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우)
 

무턱대고 손을 잡고 산을 올랐다. 장애를 가진 그들이 산을 오르기엔 힘겨우니 도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그들이 손을 놓았다.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엔 ‘왜’라는 단어만이 맴돌았다. 그들은 그런 도움이 없어도 산에 오르는 것은 쉽다고 시위하듯 경쾌한 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장애인을 도와 산행하겠다는 김동호(16·명덕)와 김연정(14·보현) 남매의 2006년 봄 노는 토요일 첫 산행은 그렇게 흘러갔다.

‘돕는다’는 생각으로 시작

“처음에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도와주려했어요. 하지만 선생님들께서 지나치게 도와주려고 하지 말고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노는 것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봉사요?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좀 특별한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있을 뿐이에요.”

지난해부터 동호와 연정이는 한살림 강동지부가 자폐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산행에 동행하고 있다. 바른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나누는 한살림의 모토인 ‘더불어 사는 삶’에 동참하고 있는 것.

봄 햇살이 고왔던 4월 14일은 4월의 노는 토요일이었다. 그 날 오전 5호선 종점 마천역에는 가벼운 차림의 청소년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통합교육을 실시하는 일반학교에 다니는 경증 자폐아 5명과 사랑나눔주간보호센터 중증 자폐아 7명, 비장애 청소년 14명이 모였다. 오늘 산행 코스는 남한산성 입구에서부터 수어장대까지. 왕복 5km에 달하는 산행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장애’, 즉 마음의 거리를 좁혀 나가는 자리다.

먼저 짝부터 정했다. 동호와 연정이는 모두 통합교육을 받는 친구들과 짝이 됐다. 동호는 고1 형과 연정이는 고3 언니와 손을 맞잡았다. 수어장대로 향하는 산길엔 산들거리는 봄바람과 이름 모를 봄꽃들이 마중을 나왔다. 마중 나온 봄바람과 봄꽃들에게 땀과 시선을 뺏기며 산을 올랐다. 만만치 않은 오르막길에 숨은 턱에 차오르고 발은 둔해졌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연정이는 틈만 나면 이야기꽃을 피운다.

“언니, 안녕. 전 연정이에요. 중학교 2학년. 요즘 걱정이 하나 있어요.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가 많아 제때 하기가 어려워요. 언니는 어때요?”

“숙제는 꼬박꼬박해야지. 앞으로 연정이 숙제 꼭 해야 돼. 알았지?”

“네….”

숙제가 많아서 고민이라는 연정이의 투정에 고3 언니는 의젓하게 한 마디 한다. 위로를 바랐던 연정이는 금세 풀이 죽고 만다. 연정이와 자폐를 앓고 있는 고3 언니 사이엔 ‘장애’라는 마음의 걸림돌이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이야기였다. 오히려 고3 언니가 마실 물도 챙겨주고 힘든 산행을 하는 연정이를 독려하곤 했다.

<사진설명>김동호-연정 남매가 등산〈사진 위〉을 한 뒤 기념촬영〈아래〉을 하고 있다.
 

얼마쯤 왔을까.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갑자기 주변이 아수라장이 된다. 말 한 마디도 못하고 행동이 전혀 통제되지 않는 친구, 조울증까지 앓고 있어 울다 웃기를 반복하는 친구, 빽빽 소리치는 친구, 같은 말을 반복하는 친구 등등. 남한산성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이 신기하다는 듯 힐끔 쳐다보고 지나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눈으로 보이는 장애인들의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같은 사람이고 조금 불편한 것이 있는 것이 다를 뿐이지 않나요? 그 사람들이 못할 거라는 생각을 버리고 평등하게 대하면 집안에서 나오는 것조차 두려운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집밖으로 나올 텐데…. 그런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도움 받아 산 올라요”

남매의 야무진 한 마디. 동호와 연정이는 지난 1년 동안 또래의 자폐 친구들을 만나오면서 마음의 문을 열었다. 산행을 하면서 가파른 곳에 이르면 자신들이 으레 손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임을 알았다. 신발 끈이 풀어지면 자폐를 앓고 있는 친구들이 먼저 허리를 숙여 무릎을 꿇고 끈을 매어줬다. 도움을 줘야할 대상과 받아야할 대상은 없었다. 산행에서 짝이 된 두 사람은 수어장대라는 목표를 향하는 아름다운 동행이자 마음 수행의 도반이었다.

“형식적인 봉사활동은 청소년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더불어 사는 것이 구호가 아닌 생활이 되어야 하지요. 거리를 지나다보면 쉽게 자폐를 앓는 장애인들을 쉽게 볼 수 없습니다. 시설에 갇혀 외부와의 관계가 단절된 장애인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산행은 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좋은 운동입니다.”

흐뭇하게 남매를 지켜보던 어머니 김석순(46·정월) 한살림 강동지부장이 입을 열었다. 산행이 자폐를 앓고 있는 친구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넘치는 에너지를 분산하는 방법을 모르는 그들이 산행을 통해 그 에너지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는 것.

김석순 씨는 남매의 투정에 미안한 적도 많다. 산행하는 날이 토요일이라 동호와 연정이가 모처럼의 주말엔 영화라도 보고 싶다고 아쉬움을 토로 한다는 것. 밥상에 앉아서는 공양게를 꼬박꼬박 외며 한 달에 한 번은 꼭 원당 문사수법회에 참석하니 남매가 고마울 지경이다. 게다가 남매는 지난해에는 위례역사문화 청소년 지킴이로도 활동했다. 유적지를 답사하며 역사공부를 하고 주변의 쓰레기를 치웠다. 남매는 문화유적지에 버려진 쓰레기들에 상처받기 일쑤였다.

“문화유적지에 쓰레기가 많아 쓰레기를 치우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 적도 있어요.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줍는 사람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1년 동안 문화유적지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윽고 수어장대에 모두 도착했다. 선생님들은 배낭을 열어 모두에게 사과 한 알을 건넸다. 꿀맛 같은 사과를 받아 든 동호와 연정이는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확 트인 서울 하늘이 두 눈 앞에 펼쳐졌다. 크게 심호흡해본다. 그러나 목적지에 다다른 기쁨은 금세 접어야 했다. 중증 자폐 증세를 앓고 있는 친구들이 점심을 먹으러 사랑나눔주간보호센터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경증 자폐 친구들도 마찬가지. 아직 물기 젖은 길인 탓에 내려가는 일이 더 조심스럽다. 어느새 동호는 짝 고1 형의 양손을 잡고 형은 동호의 양손을 잡고 가파른 길을 내려왔다. 남한산성 입구가 가까워오자 와락 동호를 껴안는 형. 말수가 유난히 적었던 그 형의 포옹세례가 동호도 싫지 않다. 도리어 남자끼리 징그럽다며 도망치기 바쁘다. 서운했던 탓일까. 남한산성 입구에 다시 모인 이들은 아쉬운 눈빛들을 뒤로 하고 다음 달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어른이 돼서도 도우며 살 것”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주말은 장애인 친구들과 보내고 싶다는 동호. 그리고 외교관이 돼 우리문화재를 많이 손상시킨 일본을 조목조목 따지고 싶다는 연정. 해맑게 웃는 남매의 가슴엔 우리 가슴 한 구석에 똬리를 튼 ‘장애’라는 편견이 깃들 곳이 없었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898호 [2007년 04월 23일 10:12]

0개의 댓글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 [미디어 붓다] 생존경쟁-물질만능의 시대 보현행원으로 극복하라 문사수 2009.11.28 7287
18 [불교닷컴] 한탑스님 법문집…황금수레바퀴 문사수 2009.11.28 8530
17 [법보신문] 다툼 가득한 가정을 정토로 바꾸는 비결 문사수 2009.09.28 6854
16 [법보신문] 나의 발심수행-염불수행 강은자 보살(하) 문사수 2009.09.28 4726
15 [법보신문] 나의 발심수행-염불수행 강은자 보살(상) 문사수 2009.09.28 5287
14 [현대불교신문] 김태영 문사수법회 대표 법사가 일러주는 직장내 포교 문사수 2009.09.28 4192
13 [법보신문] 정진 원력 모아 신행공동체 발원 문사수 2009.09.28 4031
12 [법보신문] 내 이웃은 중생 아닌 미래의 부처님입니다 문사수 2009.09.28 4118
11 [법보신문] 내가 본 큰스님-한탑스님 문사수 2009.09.28 3782
[법보신문] “장애요? 좀 다른 모습의 친구와 놀다 왔죠” 문사수 2009.09.28 3977
9 [법보신문] 문사수법회, 담양 정진원 요사채 착공 문사수 2009.09.28 4318
8 [법보신문] 정서불안 아동 미술치료 한보미씨 문사수 2009.09.28 4713
7 [법보신문] 문사수법회, 염불-108배 가행정진 문사수 2009.09.28 4405
6 [법보신문] 수행연재-나의 발심수행(하) 문사수 2009.09.28 4364
5 [법보신문] 수행연재-나의 발심수행(상) 문사수 2009.09.28 3936
4 [법보신문] 유마거사가 나의 본래면목입니다 문사수 2009.09.22 4460
3 [법보신문] 정진 선언 … 도반 격려 속 번뇌 ‘싹뚝’ 문사수 2009.09.22 4144
2 [현대불교신문] 도심수행도량을 찾아, 고양 문사수법회 문사수 2009.09.22 4436
1 [법보신문] 신행공동체 문사수법회 문사수 2009.09.20 4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