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바니 세바네
 

할머니, 당신은 그대로 빛이십니다

박 용 희 2009.09.16 조회 수 3712 추천 수 0

법당에서 초파일 준비에 한창이던 중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30년 동안 거의 같이 계셨던 당신이건만 서러운 생각이나 아쉬운 생각은 조금 뿐, 좋은 날을 택해서 돌아가셨다는 위안이 더 많았고, 그런 여러 가지들이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는 날을 스스로 선택하여 갔을 것이라는 믿음이 굳게 자리하였습니다.

 

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저는 손녀의 입장에서 당신이 떠나신 것을 슬퍼하기보다는 당신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당신을 좀 더 알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당신께서 무량행원(無量行願)으로 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어 뜻한 바를 모두 이루시고, 스스로 떠날 때를 기다렸다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신 것을 알겠습니다. 죽음의 현상으로 보여주신 그 법문은 어떤 무엇보다도 저에게 큰 법문이 되었습니다.

어차피 죽어야 할 것이라면 왜 태어나고 죽어야 하는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서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만 현상으로써 나타날 뿐이라고 귀로 들은 법문들을 머리 속에서 정리하였다지만, 여전히 멀고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죽음의 현상으로 보여주신 법문을 통해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량행원으로 돌아가신 당신의 모습 속에서 부처님의 자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부처님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원력이 할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가 다시 부처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신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자비와 원력이 언제 어디서나 저를 살려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저는 부처님을 우주의 원리인 법칙을 의인화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법문을 통해서 부처님은 인격적인 존재라는 설법을 들었지만, 그 설법이 내 마음에는 와 닿지 않아서 머리로 생각하여 나름대로 법칙에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따뜻한 자비를 느끼지 못하고, 엄격한 법칙으로 일관하여 세상의 모습들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러니 타인을 보는 따뜻한 시선보다는, 생사의 법칙을 알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은근히 비난하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저 또한 생사의 괴로움에 빠져 있었기에,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벌을 내리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정진의 부족함을 탓하면서도, 머리속에서 생각한 만큼 정진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정진해야 한다는 막연함만이 있었을 뿐, 정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진하지 않으면 괴로움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은근히 그 괴로움을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를 포함한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그때그때 상황론에 빠져서 판단하거나, 혹은 기분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제 기준으로 판단해왔습니다. 그러니 일관성이 없을 수밖에 없고, 저 뿐만 아니라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도 혼란스러움만을 전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 당신께도 그랬습니다.

당신이 안쓰러워 보일 때면 당신에게 잘 대해 주었고, 내 기준으로 보아 당신이 지나치게 요구한다 싶으면 싫어하였습니다.

당신이 떠나시기 이틀 전인가요? 제가 집에서 나오면서 당신 들으라고 일부러 큰 소리로 엄마에게 하던 그 말을. 당신께는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나와 버렸지요. 그리고 그 뒤 할머니, 당신과는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통해서 저는 비로소 부처님이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무량수경에서 무량행원이라고 법문하신 그 뜻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부처님을 자비로운 분이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자비로운 원력 속에서 내가 살려지고 있다는 것도 정말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타인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 예경드릴 때도 제 마음의 정갈함이나 욕심을 내지 않고 좀 더 넓게 생각하자는 스스로에게 결심하는 차원만이 아니라, 그야말로 부처님의 자비에 예경드리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사는 것이 더 부처님의 뜻에 옳게 사는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황론에 빠져서 허우적대지 않고, 삶의 방향을 어디에 근거하여 정해야 할 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따뜻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스스로 고통으로 들어가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제 기분과 상관없이 부처님의 법문을 들려주어야겠다는 결심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야 정진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를 위한 정진이 아닌 부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도 이제 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변의 많은 안타까운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정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끝없이 정진해야 한다는 말이 이제는 이해됩니다. 정진이야말로 우리들의 사명임을 알겠습니다.

 

이렇게 많은 가르침을 온 몸으로, 돌아가시면서까지 남기신 그 뜻을 바르게 따르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또한 당신이 베풀어주시고 손수 행하셨던 그 많은 은혜들을 이제 제가 알아 더 많은 생명들에게 베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당신 또한 많은 생명들의 도움을 당연히 받았으면서도 모두 다 갚고 가시지는 못하셨기에 이제 저와 남은 가족들은 당신의 그 마음을 받아서 당신이 받았던 그 은혜들을 갚고자 합니다.

이제 할머니의 49재를 모시면서, 할머니께서 이 세상에 나투었던 몸에 연연치 않고 본래 모습인 부처님생명으로 돌아가 또 다른 원으로 이 세상에 나투실 것을 믿습니다. 할머니, 부디 본래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낯설어 하지 마시고, 익숙했던 모습들에 연연하지 마시며, 본래 무한 광명인 빛의 세계로 편안히 돌아가시기를 부처님 전에 기원합니다.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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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나무
2020.06.29

아름다운 손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