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바니 세바네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강 은 자 2009.09.16 조회 수 3597 추천 수 0

대구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토요일 오후의 하행선 기차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일터에서 집으로 향하는 직장인, 애인을 만나는 설레임에 상기된 학생들, 또는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만남을 위해서 만사 제쳐놓고 달려나온 주부 등, 참 많은 표정이 있습니다. 그 많은 표정의 주인공들과 만나면서 제 지갑에도 명함이 하나 둘 모여갑니다.

 

부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김천 어느 기도원에 찾아간다던 아저씨의 애절한 표정은 삶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귀한 시간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분은 식이요법과 정신요양 등으로 얼마 남지 않은 부인의 생명을 끈질기게 이어가려고 건강법에 아주 큰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몸뚱이가 생명의 전부로 알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겠지요. 그래서 전 몸뚱이가 전부가 아니라며 오히려 죽음에 대해서 조심스레 말을 꺼내어 보았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삶과 죽음의 문제를 얘기하기엔 너무나 짧았습니다.

이분 뿐만 아니라 병을 고치기 위해서 지방을 찾아다니는 노부부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편안한 삶의 휴식처를 얻지 못하고 고단하게 떠도는 모습을 보고, 나 또한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한다면 나이가 들어서 저렇게 편안하지 못할 것이라는 절박함을 봅니다.

 

또 어느 날은 점잖게 보이는 분에게 돈자랑을 곁들인 재테크와, 결국은 자기 자식 자랑인 자식 교육에 관한 연설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분은 제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을 눈치채고는, 주부가 주말에는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내야지 이렇게 돌아다니면 되겠냐는 걱정도 곁들였습니다.

이분처럼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분주하게 사는 분들의 모습, 혹은 그 대열에서 튕겨져나와 지친 모습으로 역시 분주하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대합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 왜 그래야 하는지도 생각지 않고 앞만 보고 뛰어가는 사람들. 그 분들은 많은 얘길 나누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어서 혹 대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자기 말만 늘어놓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종교나 나름의 사상체계에 몰두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저 또한 이러한 부류의 사람이겠지만, 저는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엄청난 아집을 발견하고는 합니다.

이런 분들은 논의하기를 참 좋아해서 시간 보내기에는 아주 적격입니다. 우선은 상대방의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고, 자신의 사상을 잘 표현합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자기 생각에서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독단과 편견을 보면서 저를 비춰보는 계기로 삼기에, 많은 공부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한번은 불교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꽤나 공부했다고 자처하는 성경연구가를 만났습니다. 자신을 복음전도사라고 소개하던 그분은 논리 정연하게 성경의 구절을 얘기하고, 또 그만큼이나 열심히 전도에 열정을 쏟고 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성경이나 교회에 대해서 가졌던 의문을 다 물어보았는데, 정말 신이 나서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분을 보면서는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고 전법해야만 이 땅에 불교가 뿌리내릴 수 있겠구나’ 하는 위기감도 느꼈습니다. 저 사람들이 하는 노력만큼은 희사해야만 어떤 결실도 맺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종교가 개인적인 복을 비는 풍조로 흐르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복을 구하는게 옳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처님의 호념과 부촉에 대해서, 내 쪽에서 구하지 않아도 이미 나에게 다 주어져 있는 부처님의 자비 가운데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부처님의 호념 속에 있다는 말을 했지요. 이 넉넉한 안심의 세계에 대해서 더 많이 얘기하지 못하고 내리긴 했지만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언제나 알게 모르게 스스로 선택한 삶과 만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선지식과 만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 큰 행운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용한 새마을호보다 자리를 내주더라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무궁화호를 더 고집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만남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해내는 시간,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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