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바니 세바네
 

정진의 힘

이 종 희 2009.09.16 조회 수 3581 추천 수 0

 

어렸을 적 친정어머니 따라 절에 가던 생각이 납니다.

지붕 위의 하얀 박꽃과 주렁주렁 열린 박을 보면서 타박타박 먼 들길을 걸어 절에 가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아마 초파일쯤으로 기억됩니다.

전날부터 절에 모여 법회준비를 하면서, 밤에는 계곡 위에 세워진 누각에서 공양그릇을 하나씩 베고 세상이야기를 하시던 아주머니들도 생각납니다. 새벽에 세찬 물소리에 잠이 깨어보면 어느새 가지고 오신 쌀로 떡을 찧고 부처님께 과일 공양 올리시고, 하염없이 절을 하고 계시던 어머니의 뒷모습.

인자하게 웃고 계신 부처님.

단아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듯한 단청. 향내음. 염불소리…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머니는 어느새 팔순을 넘기시고 마른 몸에 하얀 머리, 눈에는 물기를 머금으시며,

“다 귀찮다. 어서 내 갈 자리로 돌아가 편히 쉬어야지”

하십니다. 강인하게 평생을 사셨지만 나이 앞에서 몸과 마음이 모두 약해지셨나 봅니다. 일제치하, 6·25전쟁, 1·4후퇴의 소용돌이에 평생 힘드시기만 하셨던 어머니의 얼굴 가득한 주름살, 아픈 다리…

가슴이 미어집니다. 내가 어떻게 해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더 가슴이 아픕니다. 법사님의 법문이 떠올라

“엄마, 염주 있으세요? 염주 돌리면서 염불하세요. 그러면 마음이 편할거예요”

하고 말씀드려봅니다.

이제는 절에 가시는 것조차 며느리에게 맡기고 평생 그랬듯이 지금도 자식 걱정, 집안 살림 걱정에 한숨이 나올 때면 습관처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십니다.

어머니의 행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아이들 손잡고 먼길 걸어 부처님을 뵈옵고 하염없이 절을 할 때가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시어머니께서 오셨습니다.

서울서 허리 수술을 받고 동서네 집에서 보름간 계시다가 오신 것입니다. 구석구석 청소하고 곰국도 끓이고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시집 온지 20년이 됐지만 아직도 편치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 시집인가 봅니다. 아니 평생 그럴 수밖에 없을까요?

서울로 병원을 다니셨지만 서울 동서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맏며느리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지나간 일들이 순간에 스쳐갑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일은 어찌 그리 기회가 되면 잘도 나타나는지…

마음이 편치 않아서 항상 부모님께 잘해야 된다고 말해주는 친구에게 전화합니다. 결론이야 알지만 그 알량한 마음이 어디 그럴 수 있냐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0년간 나 나름대로 열심히 산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시부모에게 잘하지 못한다고 말하던 남편의 소리가 한몫 거듭니다. 뻔한 이야기이고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도 뻔히 아는데, 그렇게라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가 맏이를 무척 생각해서 그러셨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그래도 그렇지....”

라고 대답합니다. 그랬더니 친구가,

“법회 열심히 나가 마음 공부 한다면서 무얼 공부했냐?”

고 합니다.

 

무얼 공부했을까…

법문을 들으면 생각하고 또 무엇인가 달라져야 하는데 달라진 모습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법회 때, ‘염불을 하는데도 왜 자꾸 번뇌가 없어지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항상 번뇌하기에 염불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법사님의 법문이 생각나서 그 이야기를 해주며,

“그래 너의 이런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

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혼자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나는 죽도록 맞고 한 대 더 맞아야 돼’ 하고 머리를 흔들면서 반성합니다. 그리고 조금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같은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 부처생명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속이 뒤틀렸는지 편치 않습니다.

자기 생각으로부터의 자유가 완전한 자유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정한 효를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효에 대해 철저히 생각하지도 않고, 제 방식대로 생각해서 ‘내가 편하게 대해드리면 부모님도 편하시겠지’ 하는 식으로 했기 때문이겠지요. 형식에 치우친 것은 싫고 그렇다고 진심으로 부처님 대하듯이 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제 밑변에는 맏이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지만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생각 속에 갇혀버려 어쩔 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염불합니다. 나의 부모님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부처님생명으로 대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 아무런 힘도 미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된 어둠일지라도

빛 한줄기가 비침과 동시에

온 곳 없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참생명 발원문의 한 구절입니다. 스스로 갇힌 생각 속에서 빨리 나올 수 있는 힘은 그동안 들었던 법문과 염불과 정진의 힘입니다.

항상 나를 살려주고 계신 모든 인연진 부처님생명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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