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바니 세바네
 

희수엄마? 보연이!

박 선 애 2009.09.16 조회 수 4097 추천 수 0

 

희수의 일기

 

1.

저에게는 예쁘지만, 골치 아픈 동생이 생겼습니다.

동생이란 낯설고 인정하기 힘든 존재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오빠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온 날로부터 오로지 동생만 보이나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울어도 쳐다보지도 않고, 울지 말라고 말 한마디 안하는 엄마가 미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예전 같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밥을 안 먹어볼까?’

‘아니야, 아가에게 밥을 줘볼까?’

...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아가처럼 하면 되겠구나 결정을 내렸습니다.

 

2.

아가는 참 이상합니다.

하루종일 잠만 자고, 팔과 다리만 버둥댈 뿐 움직이지 않습니다.

엄마는 그런 아가에게 젖도 주고, 안아주기도 하고, 심지어 응아를 하고 쉬아를 해도 이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혼이 납니다.

 

엄마는 제가 좋아하는 우유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된다며 엄마가 먹어버리기도 하고, 밤에는 아예 주지도 않습니다.

실수로 방에 쉬아를 할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얼마나 혼이 나는지 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과자며 고구마를 아가에게 먹여주려 하는데, 아가는 못 먹는다며 안된다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엄마는 왜 제가 하는 일마다 안 된다고 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제가 싫어진 모양입니다.

 

3.

엄마에게 다시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은 아가처럼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유도 젖병에 넣어달라고 하고, 쉬아도 아무데나 했더니 기저귀를 채워주셨습니다.

물론 많이 혼났지만, 아가처럼 될 수 있다면 다 할 거예요.

그런데, 엄마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가가 되었다며 할머니한테도 아빠한테도 걱정스러운 듯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예전같은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을까요?

 

보연의 일기

 

앞의 내용은 희수가 새롭게 변한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겪었을 어려움을 희수 시각에서 적어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희수를 보면 개월 수에 비해 퍽 컸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아이들은 아프고 나면 훌쩍 큰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나봅니다.

제 경우에는 어른도 그런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질문을 되짚어보며 제 자신에 대한 물음을 진지하게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말입니다.

 

「희수에게 보여지는 엄마의 모습은 어떠할지,

희수와 보리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좋은 엄마란 어떤 것인지,

부모이기에 앞서 인간대 인간으로 평등한 관점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길 바라는지,

아이들의 시야를 자칫 내 시야로 가리는 것은 아닌지,

그러지 말아야 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바로 봐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것은 명목뿐이고, 정말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닐까….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아직도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보리를 얻고, 보리라는 이름을 지으면서 보안법우와 많은 얘길 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당황스러움,

짧은 만남 속에서 불확신을 확신으로 바꾸어 나갔을 때의 기쁨,

법회를 만난 인연에 감사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계획을 세웠을 때의 설레임,

희수로 인해 이미 내가 받을 수 있는 행복은 다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까지 말입니다.

보리는 짧지만 둘이서, 또는 셋이서 지내온 지난날들에 대한 묵은 감정을 새롭게 바꿔놓았을 뿐만 아니라, 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다시 발심(發心)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은인이기도 합니다.

 

보안(寶眼), 보연(寶然), 희수(喜隨), 보리(菩提).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셋에서 넷이 되었습니다.

숫적으로는 네 배가 되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누군가 묻습니다.

희수 엄마인가, 보리 엄마인가 하고.

저는 희수의 엄마면서 보리 엄마이기도 하고,

보안의 아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 이름은 보연입니다.

보연일 때 다른 많은 이름을 묶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값하며 살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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